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올리버 라세 감독의 스타일을 마냥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너무 재미가 없다. 감독의 의도가 관객이 느린 호흡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카메라로 왜곡되지 않은 세상 그대로 말이다. 이렇게나 내성적인 주인공을 설정하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느리며, 몇 명 되지 않는 주위의 인물들 역시 매한가지라면. 좀비도 달리기를 하는 세상에 오히려 초기의 좀비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싶은 건가 싶고, 정말 그래야만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라는 속도를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올리버 라세 감독은 세상이 할리우드 영화 속 다이나믹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
어린 꾸제트의 짧은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알코올 중독인 엄마가 사고로 죽자 고아원으로 오게 된 꾸제트.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색한 꾸제트. 고아원에는 여러 사정으로 오게 된 또래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고 장난치고 짓궂게 굴면서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음이 힘든 아이들이었던 것. 그렇게 다시 서로 이해하며 위로해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기도 모르는 새 스며들듯 습득한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위할 줄 아는 것임을. 그렇다고 이런 태도들이 마냥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어울리고 부때끼는 와중에 스며들듯 습득하는 것을 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영화다. 더불어 어른(고아원..
낙타는 검문소의 차단기가 내려와 있어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낙타에게는 자유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중동이라는 지리학적 구도 속에서 국가가 강요하는 폭력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성인잡지의 요란한 누드사진 속 여자의 가슴을 X표시로 가려보려 해도 유두는 튀어나오는 것처럼, 두 눈을 가린다고 해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눈물은 흐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결국 국가가 강요한 폭력의 흔적을 땅에 묻는다고 진실마저 같이 묻힐 순 없고, 아들을 그 국가가 강요하는 폭력에서 구출해 낼 수도 없는 것이 폭력의 구조를 만들어내고야 만 인간이 처한 딜레마다. 사무엘 마오즈 감독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의 과거도 떠올..
뤽 베송이 여러모로 자신의 커리어를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느끼게 만든 작품이다. 기존에 익히 보아왔던 스파이 영화의 클리쉐를 그대로 따라가는 익숙한 느낌은 자칫 낡아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이 단점을 짧고 복잡한 편집으로 메꾸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또 다른 여성 스파이가 주인공이었던 의 스타일이 연상되는데, 나 는 이런 빠른 컷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뮤직비디오에 어울릴 법한 빠른 컷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런 스타일이 나쁘지 않았다. 반면 시간의 순서를 뒤섞은 편집이 빠른 컷과 맞물리니 너무 복잡하게 스토리를 꼬아놓은 듯 착각을 주는 것은 서사의 긴장감 보다는 복잡함을 가중시켜 관객을 조금은 불편하게 만들지 않나 싶기도 하고... 뤽 베송감..
1980년대 초중반의 청춘영화들에는 꽤 근사한 영화들이 많다. 매튜 브로데릭의 , 존 쿠작의 , 브랫팩으로 불린 청춘스타들이 총출동한 이나 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지금 소개하는 영화 도 당당히 한자리 차지할 만 하다. 그리고 브랫팩 군단에서도 한 발 먼저 치고 나온 여배우가 바로 의 몰리 링월드다. 당연히 할리우드의 주목도도 높았지만 후속작들이 히트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한물 간 배우가 되었지만 에서는 아주 이상적인 미국의 청소년상을 보여준다. 또한 사이키델릭 퍼의 나 OMD의 등 사운드트랙도 무척 좋아 은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영화다. 앤디(몰리 링월드)는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씩씩한 소녀다. 실업자인 아버지를 격려할 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 시절의 나이트메어는 꽤 무서웠다. 프레디 크루거가 쇳소리를 내면서 낸시를 부르며 흐느적 흐느적 걸어올 때면 긴장감이 더했다. 낸시의 친구 티나가 천장으로 끌어올려지며 피투성이가 될 때는 인상이 저절로 지푸려졌고, 조니 뎁이 연기한 낸시의 보이프렌드 글렌이 침대속으로 끌려들어가며 피가 분수처럼 터져 올라 천장을 적시는 장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공포영화를 싫어했던 내겐 처음보는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걸 오늘 중학생 학생 아들 녀석들과 함께 다시 봤다. 내심 이 무서운 걸 볼 수 있으려나 싶기도 했지만, 같이 본 아들 녀석들의 반응은 별로 무섭지도 않다는 콧방귀였다. 하긴 이미 워킹 데드나 킹덤을 비롯 온갖 좀비를 섭렵한 몸들이라는 걸 혼자 잊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3..
인간병기라기엔 다소 약해도 두 사람의 콤비플레이가 좋다 리처드 도너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것만 해도 과 가 있고, 해적이 숨긴 보물을 찾아 나선 의 악동들도 잊을 수 없다. 룻거 아우어와 미셸 페이퍼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는 낭만이 깃든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할리우드에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완성도 있는 오락영화를 만든 장인인 리처드 도너가 80년대 후반 새로운 시리즈를 내놓게 되는데 바로 시리즈다. 앞 뒤 가릴 것 없이 좌충우돌하는 멜 깁슨과 중후함을 보여주는 대니 글로버가 콤비가 되어 악을 해결하는 영화. 1987년은 매드맥스 시리즈의 성공으로 멜 깁슨이 전성기를 열기 시작하던 때다. 2년 전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가 성공했다. 갑자기 웬 람보냐고? 멜 깁슨..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독일영화 는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중 한명인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되짚는다. 나치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세기적 재판을 보면서 느낀점을 저술해야만 했던 당위성이라고 할까? 전기영화의 구조를 빌려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가족 및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악’이라는 그 자체에 접근하는 영화다. 안나는 ‘악’의 출현은 ‘악’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보자면 그녀의 스승이었던 하이데거가 나치의 동조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 파트에서는 사유하는 개인이 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한나의 이론에 의하면 사유에 의한 결과는 선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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