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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이 여러모로 자신의 커리어를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느끼게 만든 작품이다. 기존에 익히 보아왔던 스파이 영화의 클리쉐를 그대로 따라가는 익숙한 느낌은 자칫 낡아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이 단점을 짧고 복잡한 편집으로 메꾸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또 다른 여성 스파이가 주인공이었던 <아토믹 블론드>의 스타일이 연상되는데, <안나>나 <아토믹 블론드>는 이런 빠른 컷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뮤직비디오에 어울릴 법한 빠른 컷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런 스타일이 나쁘지 않았다. 반면 시간의 순서를 뒤섞은 편집이 빠른 컷과 맞물리니 너무 복잡하게 스토리를 꼬아놓은 듯 착각을 주는 것은 서사의 긴장감 보다는 복잡함을 가중시켜 관객을 조금은 불편하게 만들지 않나 싶기도 하고...
뤽 베송감독은 1990년대 초반 여성의 이야기인 니키타로 얻은 명성을 여성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더 재현하고자 했다. 신인 사샤 루스가 연기한 안나와 베테랑 헬렌 미렌이 연기한 올가의 케미는 강렬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이 영화가 두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데 부족함은 없다. 조직을 원하는 여성과 자유를 원하는 여성이라는 캐릭터. 괜찮더라. 조직을 장악해보고 싶은 열망이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권력욕과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 캐릭터는 작금의 추세에도 적당히 어울리는 듯하고.
그럼에도 이제는 뤽 베송이 훌륭한 감독이구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80년대 서브웨이, 그랑블루, 니키타 등을 보면서 느꼈던 누벨이마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매력은 사라지고 더 이상 느끼기도 힘들다. 하지만 신선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랜 경력의 기술자가 남아있다. 그래서 그의 후기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기본적 완성도와 재미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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