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엄마와 예술적 끼가 충만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 아들. 자유로움이 뻗쳐 나가는 친정아버지. 이렇게 셋이 만드는 로드무비. 심심할 뻔한 로드무비에 아버지가 대마초를 팔고 다닌다는 설정이 재미를 좀 더 만들어낸다. 기본적으로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가족의 이야기. 가족애의 회복을 도모하는 이야기. 아버지의 부재가 불러온 외로움이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낮은 자존감이 되어 버린 로라. 그래서 유기 동물을 불러들이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지는데... 차라리 그녀의 아들이나 동생처럼 외로움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사실 두 명의 딸과 손자의 내면이 엉켜버린 것은 아버지가 아버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 벌어진 상황인..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 아내이면서 엄마이기도 한 이사벨은 성공한 종군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죽음은 가족에게 큰 상실감을 안겼다. 특히 막내아들 콘래드는 사춘기가 겹치면서 방황을 한다. 사실 이사벨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자살이다. 그 사실을 신문에 추모기사로 내려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콘래드에게 밝히고자 하지만 지체되기만 한다. 그리고 어느덧 신문에 기사가 난다.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 콘래드는 방황을 끝낸다. 아내이자 엄마의 죽음 이후 가족에게 찾아온 트라우마를 각 개인의 입장에서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에서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지만, 안식처로만 남기에는 가족 대신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와 형 태너(벤 포스터). 마을에 있는 작은 은행 미드랜드를 턴다. 그들은 미드랜드 은행의 소규모 지점을 찾아가며 몇 차례 더 돈을 훔친다. 경찰 해밀턴이 동료와 함께 그들을 수사한다. 토비는 대대로 이어온 가난을 끊어버리겠다고 결심한 후다. 10년 동안 복역한 형과 함께 적당한 선의 돈만을 털며, 돈을 모은다. 그래서 은행의 빚을 갚고 차압당한 땅을 찾아 아이들에게 상속할 계획이다. 왜냐하면 그 차압당한 땅에서 석유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한다. 형 태너는 동생을 위해 일부러 크게 한탕 하고 자신을 희생양삼아 동생을 혐의에서 벗어나게 한다. 토비는 자신을 위해서는 그 돈을 한푼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토비는 희생한다. 해밀튼 형사는 그런 토비를 이해하기..
80년대 대만 뉴시네마에 깊은 인상과 영향을 받은 많은 감독들과 평론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대만 뉴시네마를 조명해 보는 다큐멘터리. 재미있는 건 동양권 감독과 서구의 감독들이 대만뉴시네마를 바라보는 관점이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를 비롯한 서구의 감독들은 대체적으로 대만 뉴시네마가 서구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보여줘서 새로웠다고 말한다. 1989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비정성시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80년대 내내 새로운 흐름이었던 대만뉴시네마를 중국어권에 대한 인정의 방식으로 주었다는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아시아권에서는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대만 뉴웨이브의 스타일에 주목하면서 서구 감독들과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의 감독이나 평론가들은 대만의 역사와 ..
스타일이 전부인 영화이자 실험적인 영화이면서 누벨바그 시절 고다르의 영향 아래 있는 영화인 듯하면서 60년대 모더니즘의 영화. 스즈키 세이준이 감독한 이 영화. 살인의 낙인에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거창한 주제를 찾으려고 하면 낭패다. 소개합니다. 킬러 이름은 하나다. 볼 살 토실토실한 귀여운 시시도 조의 연기. 그의 아내는 색정광. 조직으로부터 이런저런 사건을 의뢰받아 끝내주게 성공. 미사코로부터 의뢰받은 살인. 그 살인 의뢰는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사람을 차례로 죽이고 그걸 조사하러 온 외국인을 죽이는 것. 하지만 실패. 이때부터 조직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음. 이어지는 아내의 배신, 미사코의 실종. 넘버 2,4,5를 모두 죽이고, 3은 어디에? 넘버3는 바로 자기 자신. 이제 넘버1의 집요한 살해위..
칠레의 민중 시인 네루다와 그를 쫒는 형사 오스카의 이야기. 영화를 보고 있자면 희한하게도 네루다보다는 공안 형사 오스카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민중을 외치는 코뮤니스트지만 네루다는 19세기적 귀족주의의 향기가 남아있어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댓글을 보니 네루다를 강남좌파라고 표현하기도 했던데, 왠지 어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루다와 같은 삶이 아니라 오스카 같은 삶을 살고 있고 감독인 파블로 라라인 역시 영화 타이틀은 네루다를 내세우지만,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일개 시민인 오스카의 삶에 더 다가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었을런지. 어떻게 보면 오스카의 삶은 한낱 모래 한 알의 티가 되어 사라질 삶이다. 자신이 아무리 주연이라 우겨도 결국엔 조연이다. 하지만 오스카와 같은 운..
재능이 없거나 가난하거나 기회를 잡지 못해서 자신의 꿈에 접근조차 해보지 못했던 사브지안이 우연히 이란의 대표적 감독인 모흐센 마흐발마프 감독으로 오인받고 일어나는 일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다큐와 픽션을 섞어 만들었다. 주인공인 사브지안의 대사 중 감독이 되었을 때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장면이 있다. 하층민이었던 그가 평소엔 무시당하다가 마흐발마프로 오인된 이후의 그의 말은 ‘같은 말이지만’ 존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사회가 여전히 계급사회임을 알게 해준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영화가 허구의 세계이긴 하지만 현실은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영화를 보고 있자면 사브지안이 처한 현실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던 평범한..
지구를 아예 폭발시켜 없애버리는 결말은 이미 장준환의 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덕분에 그렉 아라키의 에서의 지구 폭발은 그 충격이 좀 덜한 편이긴 하지만 사이비 종교와 연관 지은 지구멸망이라는 스토리는 저예산영화의 소재로서는 괜찮은 듯. 교주의 선택된 아들이라는 컨셉이지만 솔직히 이 선택된 아들이 하는 일이라곤 섹스외엔 아무것도 없다. 주위의 인물들이 모두 그 교주의 아들을 둘러싼 인물들이라는 것이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히어로 영화가 아닌 이상 그에게 지구와 인류를 구할 임무는 없는 셈이다. 그렉 아라키의 입장에서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지구와 인류는 없어도 무방해 보이는 듯.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초능력자들이나 이성애 대신 동성애와 양성애가 오히려 정상적인 형태라고 말하는 듯한 자유분방함. 이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