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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올리버 라세 감독의 스타일을 마냥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너무 재미가 없다. 감독의 의도가 관객이 느린 호흡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카메라로 왜곡되지 않은 세상 그대로 말이다. 이렇게나 내성적인 주인공을 설정하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느리며, 몇 명 되지 않는 주위의 인물들 역시 매한가지라면. 좀비도 달리기를 하는 세상에 오히려 초기의 좀비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싶은 건가 싶고, 정말 그래야만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라는 속도를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올리버 라세 감독은 세상이 할리우드 영화 속 다이나믹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살고 있다며 리얼리즘을 들고 나온 것일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관객도 영화에서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할 터이므로 영화의 예술성을 떠나 지루해 죽겠다는 불만은 감독 스스로도 감내해야 할 듯.



게다가 영화가 미시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에 정진한다. 자연이라는 절대성. 그 속에 있는 인간은 한낱 점같은 존재 정도? 아무리 인간이 자연을 바꾸려고 해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 그렇게 느리고 느리게 영화는 결국 인간끼리 해결하지도 못할 오해만 가득 만든 채 지지고 볶는다는 것?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느린 인물들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90분 동안 참아야 한단 말일까?


이제 점점 더 이렇게 느린 호흡의 영화는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2019년 말 한국영상자료원 극장에서 올리버 라세 감독의 영화를 보며 불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옆에 앉아있던 20대의 청년은 눈에 힘을 주며 어떻게든 칸느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온갖 국제 영화제를 돌고 있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나도 그땐 그랬다. 하지만 이젠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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