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독일영화 <한나 아렌트>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중 한명인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되짚는다. 나치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세기적 재판을 보면서 느낀점을 저술해야만 했던 당위성이라고 할까? 전기영화의 구조를 빌려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가족 및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이라는 그 자체에 접근하는 영화다.

 

안나는 의 출현은 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보자면 그녀의 스승이었던 하이데거가 나치의 동조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 파트에서는 사유하는 개인이 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한나의 이론에 의하면 사유에 의한 결과는 선을 선택해야 하지만 하이데거의 에피소드는 사유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셈이다.



하이데거 에피소드보다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나치에 부역한 유태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깨닮음과도 같았다. 그렇다. 친일파가 있듯이 왜 나치부역했던 유태인이 없겠는가 말이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은 가장 극적인 장면들을 만든다. 히틀러와 아이히만이 모든 죄를 짊어져야 하는데, 한나는 그걸 내부의 배신자를 드러내게 하면서 그들만의 순결주의에 흠집을 낸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이것이 또한 이 영화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했는데, 친일의 문제부터 시작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 즉 자한당같은 기득권에 한없는 면죄부를 부여하면서 낮은 자세를 고집하며 스스로 노예가 되려고 하면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 강한 권력을 추종하는자. 그것이 허구일지라도말이다. 광신도가 되어 버린 사람들. 비판하는 시각이 결여된 약 30퍼센트라는 콘크리트가 있듯이 말이다.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인간으로서의 자격. 즉 사유하는 능력을 가진 개인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악이다. 한나가 말했듯 악은 평범하지만 근본적일수 없고 극단적인데, 자칭 한국의 보수우파라고 하는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바로 악과 동일한 것인 셈이다. 근본적인 것은 결국 선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이 이긴다고 말하곤 한다. 사유하지 않는 자한당과 그 무리들과 그에 기생하는 버러지들은 바로 나치에 부역한 유태인들이라는 존재를 숨기며 진실을 호도하려 했던 유태인 보수주의자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것을 되새겨봄 직하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