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멜빌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뼛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파는 영상이 주특기라고 할만큼 그동안 내가 본 그의 영화의 느낌은 아랑 드롱의 잘생긴 얼굴에 고독이 조각칼이 되어 주름살을 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후반기의 작품에서는 고독이 그 자체로 주제가 되어 장르를 아우르고 있을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의 이런 성향은 지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 을 보면서 한번 더 느껴본다. 물론 후기작만큼 고독이 사무치진 않지만 그래도 그 정서는 짙은 커피향같은 여운으로 공기속을 떠돈다. 2차대전중인 프랑스의 시골마을.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전쟁은 배경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부인 바르니가 재미없는..
주인공은 왜 무한루프속으로 스스로 뛰어드는가? 2009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IPTV가 아닌 극장에 정식으로 개봉되었다는 건 입소문이 상당히 높다는 걸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의 이 바로 그런 영화다. 이미 호러영화팬들 사이에서는 꽤 괜찮은 작품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은 특정시간이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다. 그런데 왜 영화 속 인물들은 일종의 지옥으로 말해지기도 하는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는 걸까? 이 영화 역시 주인공 제스가 왜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영화다.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무한루프의 처음이 아니라 이미 상당히 반복된 후의 중간지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한루프는 왜 제스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탈..
로 데뷔한 끌로드 샤블롤의 첫 성공작 은 부조리하다는 것이 뭔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한마디로 이거 뭔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 화를 내봤자 세상은 어차피 널 속이니까? 막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감독이 보는 당시의 프랑스 사회가 이토록 부조리한 것이었을까? 간단하게 말해. 희망조차 말살시켜 버리는... 그러다 보니 50년전의 이 영화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일치해버리는 것 같은 이상한 기시감마저 가지게 만든다. 시골출신의 샤를르는 법률 시험 통과를 위한 준비를 위해 파리로 온다. 재산 많은 부모의 도움으로 호의호식하는 사촌형 폴의 집에 머무르며 자유분방해 보이는 폴의 친구들에게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 플로랑스도 폴에게 뺏겨..
는 전작인 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속편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작의 마다가스카르의 추격씬에 비할 만큼 멋진 카체이스씬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일단 베스퍼에 대한 제임스 본드 개인의 사적인 복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 복수심은 국가의 대리인으로서의 스파이라는 정체성과 부교합하기 때문에 이것은 제임스 본드의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다. 조직 곳곳에 숨어있는 내통자라는 설정등이 컴퓨터망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국가처럼 돌아가는 세계를 생각나게 만든다면, 영화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막연하게 거대조직이 계획하고 있는, 남미의 쿠데타를 통한 자원의 확보라는 사업에 영국이나 기타 여러 선진국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려는 것 역시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는 설정일 ..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한 007 시리즈는 2000년대 이후 나온 액션영화중 멧 데이먼의 본 시리즈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액션영화다. 이전 007 시리즈도 모두 챙겨보았지만 재미의 여운이 그리 오래가는 편은 아니었다. 실은 그렇게 흥분해서 방방 뛸 만큼 영화적으로나 재미로나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고 하는게 맞으려나... 그런데 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물론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배우인 다니엘 크레이그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었던 것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오프닝이 지난 후 첫 시퀀스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마다가스카에서의 추격씬에 온통 빠져들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제임스 본드가 총이 아닌 주먹과 다리 등 온 몸을 사용해 액션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리고, 넘어지고, ..
1958년 끌로드 샤브롤은 앙드레 바쟁의 아이들인 까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 중에서 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감독으로 입문했다. 바로 그 유명한 누벨바그가 막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년 뒤 프랑소와 트뤼포가 를, 장 뤽 고다르가 를 발표하고 성공을 거두면서 부터였지만 끌로드 샤블롤은 그들과는 또 다른 작품세계로 누벨바그의 한 축을 당당하게 장식했다. 알려진 바로는 는 바로 개봉을 하진 못했다고 한다. 2번째 작품인 이 성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개봉되었다고 하니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였던 셈. 개인적으로는 의 완성도가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의 감성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히치콕 매니아로 알려져 있듯 이후의 작품세계가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였던 것에 비해 데뷔작 는 드라마였지만..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43년 작품인 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와 함께 네오리얼리즘의 효시격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은 분명 네오리얼리즘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들어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스타일적으로는 필름 느와르영화에 더 가까워 보였다. 2년 후에 개봉되는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네오리얼리즘의 사실적인 화면보다는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듯한 촬영과 사운드의 사용이 돋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양가적인 특성을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선 찰스 M 케인의 원작소설이 가지고 있는 치정극의 요소가 느와르적인 드라마 구성을 만들었고, 당시 2차 대전중이었던 이탈리아라는 공간이 화면과 인물들의 배경으로 배치되면서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쩌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처음부터 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은 때문인지 꽤 엽기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데뷔작인 나 2번째 작품인 를 보다보면 그가 전후 이탈리아의 영화 흐름이었던 네오 리얼리즘의 자장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이후 파졸리니의 영화스타일이 리얼리즘이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영화세계의 심연에는 네오 리얼리즘이 맹아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1962년의 이탈리아를 바라보는 파졸리니 감독의 시선은 꽤 냉정하다. 과연 희망이란 것을 꿈 꿔 볼 수 있는 곳인가 하는 회의가 영화 내내 묻어난다. 과거 한때 창녀였지만 외아들 에또레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희망으로 과일장사를 하는 '정말' 씩씩한 엄마 맘마 로마. 이제 청소년이 된 에또레를 로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