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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멜빌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뼛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파는 영상이 주특기라고 할만큼 그동안 내가 본 그의 영화의 느낌은 아랑 드롱의 잘생긴 얼굴에 고독이 조각칼이 되어 주름살을 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후반기의 작품에서는 고독이 그 자체로 주제가 되어 장르를 아우르고 있을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의 이런 성향은 지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레옹 모랭 신부>나 <도박사 밥>을 보면서 한번 더 느껴본다. 물론 후기작만큼 고독이 사무치진 않지만 그래도 그 정서는 짙은 커피향같은 여운으로 공기속을 떠돈다.

 

2차대전중인 프랑스의 시골마을.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전쟁은 배경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부인 바르니가 재미없는 일상을 견디는 방법으로 동원하고 있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 주장하며 카톨릭 신부와 맞장뜨기다.

 

장 피에르 멜빌이 전쟁과 종교라는 거대담론을 들고 나왔지만 정작 관심을 두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한 인간이다. 바르니의 종교비판에 의외로 동조하고 나서는 레옹 모랭 신부와의 대화가 주 플롯이라면, 매력이 철철 넘치는 미모의 동료 여자상사 짝사랑하기와 독일에 부역한 여인들의 이야기. 이탈리아 군인에 대한 코믹한 모습이나 비르나의 딸 프랑스와 독일군인간의 우정등을 통해서 부각되고 있는 것은 거대담론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개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칭 종교계의 운동권이라 할 레옹 모랭 신부를 우회하여 보여주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기도 하지만 민중을 구원할 수도 있는가의 문제를 거대담론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수도 있다면 장 피에르 멜빌감독의 관점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종교 자체가 민중을 구원하는 수단도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끝난 후 비르나는 레옹 모랭 신부에 대해 육체적인 갈망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거대담론의 압박이 물러난 자리는 개인의 사적인 욕망이 대신한다. 그리고 레옹 모랭 신부는 시험에 들게 된다. 그는 비르나에게 책을 빌려주고, 무신론자에서 신을 믿게도 만들고, 여러 가지 도움을 줄수는 있지만 그녀의 성적욕망은 해소해주지 못한다. 까짓거 눈한번 질끈 감고 섹스를 할수도 있지만 카톨릭 사제로서의 레옹 모랭의 욕망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대담론 대 거대담론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서의 욕망의 충돌이라는 것. 결국 비르나가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종교를 찾으며 ‘나라는 존재’를 찾으려 하고, 레옹 모랭 신부가 비르나와의 섹스 대신 더 낙후한 시골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 역시 사제로서의 일방적인 희생 대신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길찾기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옹 모랭 신부>를 통해 장 피에르 멜빌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고 존재의 의미는 스스로 발견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그래서 감동적이었고 독특하게 다가온 인상적인 영화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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