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잉그리드에게는 남편 모튼이 있다. 모튼은 그녀에게 집안에만 있지말고 바깥 나들이라도 할 것을 권유하곤 한다. 그러나 잉그리드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집에 틀어박혀 노트북으로 자신만의 소설을 쓴다. 소설속에서는 남편과 남편 친구 에이너. 에이너가 좋아하는 여자 엘렌등이 등장해 잉그리드의 상상력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세상에 나설 자신감도 없고,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소설 속에 그대로 재현된다. 에스킬 보그트 감독은 맹인여성의 심리를 꽤 진지하면서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잉그리드의 불안한 심리를 급작스럽고 혼란스런 편집으로 드러낸다. 잉그리드가 내면으로만 침잠하면서 만들어낸 소설 속에서 남편 모튼, 남편의 친구 에이너, 그리고 잉그리드의 분신이기도 할 엘렌..
뤼미에르 형제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을 찍은 필름을 상영했을 때, 극장에 있던 관객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고 한다. 실제 기차가 그들에게 달려드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1895년.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고, 대중앞에 선보였다. 그야말로 스텍터클이다. 영화는 어쩌면 처음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액션영화로 관객에게 돌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뤼미에르의 영화가 리얼리즘 영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리얼리즘은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앙드레 바쟁 식으로 말하면 현실의 순수한 모방이다. 그리고 뤼미에르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무엇보다도1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순수한 영화체험은 바로 시네마 천국의 시초였던 셈이..
조르주 멜리에스도 뤼미에르 형제의 필름을 극장에서 보았을 거다. 마술사였던 그는 진짜 마술같았던 그 황홀경에 곧 도취되었을 것이다. “오, 뤼미에르여, 그대들이 진짜 마술사요” 곧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선 멜리에스는 스크린 위에서 마술처럼 점멸하던 장면들과 같은 이미지가 자기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곧 멜리에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대로 복사한 영화에 싫증을 났을테고, 마술사라는 직업을 위해 익혀두었던 트릭을 필름에 재현해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1902년 세상에 나타난 은 두번째 황홍경으로 세계 영화사에 기록되어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대로 필름에 담아, 그야말로 움직이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조르주 ..
벤 팔머 감독의 은 사이먼 페그와 레이크 벨의 밀고 당기는 사랑게임이 꽤 재미있다. 그러니까 로맨틱 코미디는 이런 재미로 본다고 할까? 예상 가능한 스토리였지만 그 꽁냥꽁냥을 외면하긴 힘들다. 몇 년 째 싱글인 낸시. 부모님의 40주년 결혼 기념일 가족 모임에 가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가는 기차. 앞자리에 앉은 어떤 여자의 데이트 상대와 어쩌다 보니 대신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잭이고, 귀엽고 유머감각도 있는 40살의 남자다. 결국 엉뚱하게 데이트를 하게 된 두사람. 잭과 낸시는 어떤 면에서 너무 소심하고, 어떤 면에서 너무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하루 동안의 데이트를 쌓아가며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그들이 만나는 설정 자체는 익숙한 편이라 진부하다 할 만하지만..
마르코 벨로키오는 이탈리아의 좌파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는 항상 정치를 자신의 영화의 중심부에 둔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와 섹스를 연결하여 사고하는 것은 여러 감독들이 즐겨 차용한 사회비판의 방식이기도 했다.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1986년 작품인 는 바로 이런 성과 정치를 연결시킨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오르내리는 작품은 아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교실 밖으로 보이는 지붕위에 란제리 차림의 한 흑인여인이 미친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이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그들 중에 줄리아가 있다. 교실에 있던 안드레아는 줄리아에게 반해, 그녀를 미행한다. 집을 나선 줄리아는 테러리스트에게 희생당한 아버지의 무덤에 꽃을 바친 후,..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1939년 작품 은 프랑스의 영화 사조였던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중의 한 편이다. 순수하고 성실한 청년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염세적인 세계관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랑소와(장 가방)는 발랑탱을 총으로 쏘고 만다. 프랑소와는 그의 좁은 방에서 왜 발랑탱을 죽이게 되었는지 회상한다. 이웃의 신뢰를 받는 성격 좋은 공장노동자인 프랑소와는 우연히 꽃 배달을 온 프랑소와즈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프랑소아를 사랑하면서도 마술사인 발랑탱 역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망한 프랑소와는 발랑탱의 조수이자 애인이었던 클라라와 만난다. 비열한 성품의 발랑탱은 프랑소아즈를 ..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를 보고 나면 마음이 잔잔해지면서 편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쳇바퀴 돌아가듯 흘러가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삶에서 한번쯤은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것을 꿈꾸어보자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 말이다. 분명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라는 공간 속에서만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 꿀 권리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꿈은 계속 실마리를 찾아 타래를 만들고, 그런 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믿음이 조금씩 쌓여간다. 그런 상상이야 말로 어쩌면 먹고 살기 위한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잠시 동안의 일탈이 되어 휴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꿈을 상상해보는 것. 그래서 현실의 삶에 좀 더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
조 라이트 감독의 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좀 의아하긴 했다. 멜로드라마를 고급스럽게 만들었던 감독이 액션영화라니...그런 느낌. 그래서인지 그다지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게다가 입소문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기대는 점점 떨어졌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지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배우 에릭 바나가 나오네? 이랬을 정도다. 하지만 다 보고 난 후엔 영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인간 병기로 키워진 어린 소녀의 맨몸 액션도 볼 만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외로움의 정서가 와 닿는다. 마치 본 시리즈를 처음 볼 때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알싸한 감정이라고 할까? 묘하게 가슴 한 곳이 묵직해지다가 여운이 드리우고, 뭔가 슬픈 듯 하다가 쓸쓸해지는 것 같은 느낌. 영화가 너무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