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을 보면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사유지에서 휴가를 즐기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홀로 운전하다 강에 빠지는 씬인데, 여기서 감독은 여왕이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불현듯 버즈 아이 뷰 쇼트로 넓은 초원지대를 지나고 있는 차(여왕이 운전하고 있는)를 보여준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편집기법이었지만 앞뒤 스토리와 맞물리면서 내겐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불러 일으키며 그녀-여왕의 심리 혹은 감독이 여왕을 바라보는 시점,관점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여왕의 외로움이다. 넓은 초원지대는 그녀가 통치하는 땅, 나아가 영국을 가리키는 듯보이지만, 그녀는 혼자라는 것. 군주로서의 위엄을 지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녀는 한낱 외로운 여성이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악마의 등뼈는 높은 완성도와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공포영화라고 할 만 하다. 스페인 내전중의 한 고아원에 독재자 프랑코에 저항하는 아버지를 둔 까를로스가 도착하고 기이한 사건에 휘말린다. 이 영화는 내전 당시 스페인의 모습에 대한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다. 프랑코라는 한 사람에 의해 내전에 휩싸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 스페인과 하킨토라는 한 사내에 의해 죽음을 맞는 고아원의 원생과 어른들의 모습을 판타스틱한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유럽은 지금 두려움을 앓고 있다는 내레이션처럼 프랑코나 하킨토라는 괴물의 출현은 유럽이 앓고 있는 공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도 계속 되고 있는 전쟁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엔 없었지만 2006년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등..
이름도 예쁜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와 파브리 카네파의 연출작 더 로드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기 위해 외갓집으로 가던 가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좀 더 빨리 가기위해 지름길로 들어선 그들이 타고 있는 차에는 운전중인 아버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 새침때기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 건들거리는 아들이 타고 있다. 어디로보나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킬 뻔 한 그 순간부터 길은 계속 반복되며 출구를 알수가 없고 그들은 하나씩 죽어나가고, 또한 각자 가지고 있던 비밀을 쏟아낸다. 아들은 마약쟁이였고, 딸은 임신중이며, 아내는 아들이 남편친구와 바람피워 낳은 아들이라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행복한 가정이 사실은 형편없..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항상 그렇듯이 에서도 어머니와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항상 그렇듯이에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데, 이 어머니와 모성의 문제는 이후의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다. 90년대는 이런 주제보다는 이리저리 꼬인 애정문제를 화려한 미장센을 통해 풀어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 감독의 작품을 이런 저런 계보에 집어 넣으려 시도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전 작품인 은 2000년대 그의 작품 계보 보다는 오히려 80년대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레즈비언 수녀들의 난장판 이나 게이들의 난장판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어 좀 소홀한 경향이 있다. ..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접근하기 위해 꿈이라는 모티브를 자주 활용했다. 에서 늙은 교수는 꿈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랑과 증오같은 당시의 감정을 되풀이 겪곤 한다. 영화 안에서 이런 행위들은 인물의 트라우마의 근원으로 찾아가서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하면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나아가 스웨덴 영화의 표상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 서정적이고 연극적인 스타일이 50년대 스웨덴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냈다면, 특수효과 기술이 진일보한 현대에는 스웨덴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기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있는 듯한데 그가 을 만든 만스 말린드와 뵤른 스테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
안타까운 사랑이 있는 호러 영화를 보고 싶다면 묵시록영화라면 멜 깁슨이 출연했던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묵시록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꼭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일 필요는 없다. 세상이 파괴된 이후다 보니 사막을 배경으로 간단한 소품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충분히 저예산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소재라는 것이다. 마티유 투리 감독의 역시 이런 저예산을 활용한 영화였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과거는 세상이 망하기 이전이다. 마약 중독자 줄리엣과 돈 많은 미술상 잭과의 만남. 그들의 사랑의 여정이 주요한 이야기다. 잭의 희생과 헌신으로 줄리엣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임신한다..
애나(샤롯 램플링)는 할머니다. 할머니 애나는 영화가 시작되면 사이먼이라는 남자에게 전화한다. 에미와 키아라와 밥 먹자고. 하지만 곧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지 망연자실해지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후에도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거는 장면은 몇 번 더 나온다. 하지만 비가 내리거나 앵글이 기울어져 있거나 부스밖에서 잡히거나 어쩄든 왠지 불안한 기운을 내포하는 영상으로 연출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이런 것들이 복선으로 기능함을 알게 된다. 그렇게 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할머니 애나의 이야기다. 그녀는 진실된 사랑과 관계를 갈구하는 여자다. 그녀는 싱글의 밤이라는 파티에서 조지를 만난다. 친절한 듯 보이지만 음흉한 눈길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다. 그리고 조지는 시체로 발견된다. 이제 영화는 조지를 살해한 범인..
를 극장 개봉시에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10여년만에 다시 DVD를 꺼내들고 재감상 했다. 그때 보지 못했던 것. 여러 가지가 다가오면서 그때 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단지 넘치는 재능의 빌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발레학교에 입학해 성공한다는 것이 아님을. 물론 그런 성장담만으로도 많이 감동적이지만, 이번에는 나무 대신 좀 더 넓은 숲을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넓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재감상을 통해 보았던 건 빌리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이었고, 좀 더 나아가 춤선생과 마을 사람들 전체였다. 간단히 말하면, 재능으로 똘똘 뭉친 빌리의 성공 뒤에 단순히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다는 식의 관점은 약간은 표피적인 접근으로 보였다.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