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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인 <007 카지노 로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속편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작의 마다가스카르의 추격씬에 비할 만큼 멋진 카체이스씬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일단 베스퍼에 대한 제임스 본드 개인의 사적인 복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 복수심은 국가의 대리인으로서의 스파이라는 정체성과 부교합하기 때문에 이것은 제임스 본드의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다. 조직 곳곳에 숨어있는 내통자라는 설정등이 컴퓨터망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국가처럼 돌아가는 세계를 생각나게 만든다면, 영화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막연하게 거대조직이 계획하고 있는, 남미의 쿠데타를 통한 자원의 확보라는 사업에 영국이나 기타 여러 선진국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려는 것 역시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는 설정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임스 본드가 어떤 식으로 국가의 탐욕과 개인의 복수심을 적절하게 조율해가는가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서브 플롯으로서 관객들이 이전의 007 시리즈를 통해 학습된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와의 긴장을 통한 서스펜스적으로 기능하면서 일차적인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마크 포스터의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연출 목표가 제임스 본드의 개인적 복수심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발언보다는 어떻게 프리퀄로서 이전의 007 시리즈와 성공적으로 접합할 것인가에 있다고 봤다. 더불어 변화된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는 세련됨까지 갖추면서 말이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가 무척 재미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내러티브가 진부한 편이라는 것을 먼저 말해야 겠다. 남미의 쿠데타나 아버지의 복수, 감지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조직이라는 것은 닳고 닳은 소재다.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발생할 것 같지 않은 비정상적인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독재자나 아버지의 복수와 같은 것들이 이전의 007 제임스 본드가 활동하던 시절의 과거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반면에 스펙터와 KGB라는 조직을 전면에 내세웠던 과거에 비해 실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범죄조직이라는 설정은 상대적으로 모던해 보인다. 이미 21세기의 액션의 교본이 된 본 시리즈로부터 가져온 액션 시퀀스의 현란함. 냉전과 통신에 이어 환경문제를 끌어들인 것들이 신조류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007의 살아남기 전략이지만 무엇보다도 이전의 007과 이 프리퀄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역시 본드걸을 대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초보냄새 물씬나는 상처투성이 제임스 본드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의 유일한 여성은 카드퀸이었다.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이전 작품들처럼 여체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전통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 방법은 다른데, 이전의 작품들이 섹스토이로서의 여체였다면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본드를 위기에 몰아넣는 팜므 파탈처럼 말이다. 카밀과 필즈라는 두명의 본드걸이 등장하지만 그녀들은 맹목적으로 본드를 사랑하는 청춘가련형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90년대부터 M을 주디 덴치에게 맡긴다든지, 양자경과 같은 전사적 본드걸이 등장하긴 했지만, 카밀과 필즈는 섹스어필까지 갖추면서 그들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가장 파격적이라면 본드와 카밀이 도미닉 그린의 음모를 분쇄한 후 섹스하지 않고 헤어진다는 것일테다. 여체의 정복이야말로 냉전을 뛰어넘는 최고의 목표처럼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곤 했던 선배 제임스 본드를 보라. 물론 지금의 본드가 아직까지는 순진해서 그럴수도 있다고 해도 되겠지만...^^

 

어쨌든 영화 자체로는 좀 얕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007 퀀텀 오브 솔러스>는 의외로 모든 목표를 다 성취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제임스 본드는 베스퍼에 대한 복수를 성공함과 동시에 국가요원으로서의 존재감도 성공적으로 증명했고, 프리퀄로서 과거의 007과의 연결점에도 성공하면서 과거의 이미지는 간직한 채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서의 정체성도 확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적으로는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를 통해 성공적으로 뉴 007 시리즈로서 시장에 안착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총보다는 야마카시와 본 시리즈를 경유한 액션시퀀스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얘기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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