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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은 <살로, 소돔의 120일>때문인지 꽤 엽기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데뷔작인 <아카토네>나 2번째 작품인 <맘마 로마>를 보다보면 그가 전후 이탈리아의 영화 흐름이었던 네오 리얼리즘의 자장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이후 파졸리니의 영화스타일이 리얼리즘이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영화세계의 심연에는 네오 리얼리즘이 맹아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1962년의 이탈리아를 바라보는 파졸리니 감독의 시선은 꽤 냉정하다. 과연 희망이란 것을 꿈 꿔 볼 수 있는 곳인가 하는 회의가 영화 내내 묻어난다. 과거 한때 창녀였지만 외아들 에또레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희망으로 과일장사를 하는 '정말' 씩씩한 엄마 맘마 로마. 이제 청소년이 된 에또레를 로마로 데려와 좋은 동네에서 교육을 시키려고 준비를 했지만, 과거 포주였던 카르미네가 돈을 요구하며 발목을 잡는다. 할 수 없이 맘마 로마는 빈민가에서 아들과의 새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의 희망과는 반대로 에또레는 동네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맘마 로마는 씩씩하게 아들의 보호막이 되려고 동분서주한다. 재미있는 것은 맘마 로마가 아들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60~70년대의 우리나라 영화에서 억척스런 어머니가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에또레는 맘마 로마의 과거를 알고 방황하다 교도소에 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또레는 손발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엄마를 찾는다. 또한 맘마 로마는 애타게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안타까운 결말이다.

 

파졸리니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로마 외곽의 거리의 풍경이다.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좀도둑질을 한다. 여인들은 밤거리에서 몸을 판다. 그 속에서 맘마 로마의 씩씩한 모습은 유난히 도드라진다. 그녀는 아마 세상과 맞서 보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맘마 로마의 실패담이다. 맘마 로마도 맹자의 어머니처럼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왜 실패해야 했던 것일까? 표면적으로 카르미네가 자신을 거부한 맘마 로마에 대한 치졸한 복수의 일환으로 에또레에게 어머니의 과거를 이야기함으로써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상에서 카르미네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라고 보여진다. 즉, 내러티브 상의 약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역할 정도 말이다. 그러므로 파졸리니 감독은 실질적으로 맘마 로마가 실패한 이유를 거리의 아이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 듯, 전후 이탈리아 사회가 안고 있었던 구조적 모순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 어머니인 맘마 로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 그것이 바로 파졸리니가 바라보는 당대의 이탈리아인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 마지막 장면에서 에또레가 침대에 묶여 있는 미장센을 통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떠올렸다. 에또레는 엄마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엄마를 원망한다. 이건 마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예수의 외침처럼 들렸다. 안타깝게도 에또레는 신의 아들이 아니었고, 맘마 로마는 마리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씩씩한 엄마는 단지 씩씩할 뿐이며 아무런 힘이 없는 무산계급이라는 것. 억울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 세계라는 것을 파졸리니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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