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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한 007 시리즈는 2000년대 이후 나온 액션영화중 멧 데이먼의 본 시리즈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액션영화다. 이전 007 시리즈도 모두 챙겨보았지만 재미의 여운이 그리 오래가는 편은 아니었다. 실은 그렇게 흥분해서 방방 뛸 만큼 영화적으로나 재미로나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고 하는게 맞으려나...

 

그런데 <007 카지노 로얄>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물론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배우인 다니엘 크레이그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었던 것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오프닝이 지난 후 첫 시퀀스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마다가스카에서의 추격씬에 온통 빠져들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제임스 본드가 총이 아닌 주먹과 다리 등 온 몸을 사용해 액션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리고, 넘어지고, 뚫고, 뛰어넘으며 보여주는 액션의 쾌감은 특수효과나 무기를 사용한 여타 액션과는 다른 끈적한 땀방울을 그대로 스크린 밖으로 분출해내는 것만큼 사실적이었다. 게다가 수평과 수직을 환상적으로 연결한 미장센과 배우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이어서 시퀀스가 끝나면서는 나도 같이 뛴 것같은 생생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밀레니엄 이후의 새로운 007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일단 이 영화가 섹슈얼리티를 관통하는 방식이 예전의 007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우선 오프닝타이틀에서 환상적인 여체의 선이 사라졌다는 것아 제작자가 이전 007의 알버트 브로콜리의 딸인 바바라 브로콜리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분명 기획단계에서 이제 전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 007시리즈와 차별화시키는 방안의 하나로써 여성의 섹스어필이 아니라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본인의 육체의 매력을 전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생각되었다. 이는 변화된 시대상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제임스 본드의 몸을 많이 보여준다. <007 닥터노>의 우슐라 안드레스를 패러디한 장면을 비롯, 에바 그린이 살인의 충격으로 드레스를 입은 채 샤워기의 물을 맞고 있을때 에바 그린의 몸 대신 흰 와이셔츠가 서서히 물에 젖으며 다니엘 크레이그의 육체가 드러나게 한다든지, 고문장면에서 에바 그린은 숨겨두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누드만 보여준다든지 하는 장면들은 분명 시선의 주체를 여자로 고정시킴으로써 좀 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여성의 차지였던 장면들을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만 새로운 부분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확실히 여자에게 보이는 관심도가 이전의 선배들보다는 약하다. 선배들이 거의 발바리급이라면 뉴 제임스 본드는 일부일처에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은 고정 007팬들에겐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며, 예전 제임스 본드와의 연결고리에서도 약간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다음편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 이런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본드의 러브스토리


보통 120분짜리 영화 한편에서 프롤로그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여분 정도다. 그러므로 길어도 30분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007 카지노 로얄>은 거의 50여분을 투자한다. 이 영화가 제대로 스토리로 진입하는 부분은 제임스 본드가 베스퍼(에바 그린)를 만나느 순간부터다. 그러므로 그 이전은 모두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 설정을 위한 것들이었다. <007 카지노로얄>의 또 하나의 재미있는 순간은 바로 007이 멜로드라마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와 베스퍼의 지독한 사랑의 순간을 담아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연인들이 안타까운 이야기. 이전에 여왕폐하 대작전에서 제임스 본드가 처음 결혼한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밀월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국가적 대의와 개인의 감정 문제를 계속 건드린다. 국가정보요원으로서의 냉혈한 마초 제임스 본드여야만 하지만, 프리퀄에서는 아직은 감정의 컨트롤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본드의 모습이 더욱 재미있다.

 

이렇듯 <007 카지노 로얄>은 이전 시리즈와의 차별화에 성공함으로써 내겐 이전의 007의 이미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왔다. 뉴 제임스 본드는 그 누구도 아닌 새로운 제임스 본드였던 것이다. 그가 보여주던 인간적 감수성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총이 아닌 육체를 사용한 액션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완결되어 끝나진 않는다. 단지 베스퍼와의 사랑이 파국을 맞음으로써 제임스 본드의 심연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제임스 본드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본격적인 스토리는 아마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이야기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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