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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를 극장 개봉시에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10여년만에 다시 DVD를 꺼내들고 재감상 했다. 그때 보지 못했던 것. 여러 가지가 다가오면서 그때 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단지 넘치는 재능의 빌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발레학교에 입학해 성공한다는 것이 아님을. 물론 그런 성장담만으로도 많이 감동적이지만, 이번에는 나무 대신 좀 더 넓은 숲을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넓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재감상을 통해 보았던 건 빌리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이었고, 좀 더 나아가 춤선생과 마을 사람들 전체였다. 간단히 말하면, 재능으로 똘똘 뭉친 빌리의 성공 뒤에 단순히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다는 식의 관점은 약간은 표피적인 접근으로 보였다.

 

먼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빌리 엘리어트>에서 두 개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하나는 주 플롯이라 할 춤을 위한 빌리의 투쟁. 나머지 하나는 서브 플롯인 80년대 대처시대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결국 주 스토리가 빌리에게 집중되어 있어 약간은 간과되고 있지만, 빌리의 투쟁만큼 아버지와 형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투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 또한 현실임을 달드리 감독은 냉철하게 짚어나간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가 끝나버렸다면 <빌리 엘리어트>는 그저그런 성장담 영화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빌리의 성공은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의 투쟁은 결국 패배처럼 묘사되고 있다.

 

내러티브적으로 빌리가 런던으로 떠날 때 파업은 종료된다. 이때 런던으로 떠나는 빌리와 탄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아버지의 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빌리는 로 앵글로 잡으며 그 부푼 희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반면 전체 광부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함으로써 희망을 잃은 혹은 상실한 실패자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들은 정말 실패한 것일까?

 

다시한번 빌리가 런던으로 가기 위해 마을을 떠날 때, 그 미장센과 분위기는 쓸쓸함 혹은 씁쓸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실패자인 듯 보일 정도다. 춤 선생님까지도 쓸쓸한 표정으로 시퀀스에 끼어든다. 그런데 이 장면들이 일반적인 관객의 사고를 반영하는 장면이라고 한다면 어떤가? 즉, 관객들은 이미 빌리와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공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나 형, 춤선생이 자신들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지금까지 지켜봐 왔으면서도 그들은 관객의 시선에 의해 패배자가 되어 버린다. 절대 그들은 패배자가 아님에도 말이다. 평범한 삶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사회다. 물론 스티븐 달드리 감독도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빌리의 모습을 통해 그 재능을 축복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와 형의 삶이 그 재능을 위한 희생일 뿐이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달드리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부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빌리의 치열한 삶이나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평범한 인생을 살아내는 아버지나 형, 춤선생님, 여타 마을 사람들의 치열함은 모두 똑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아버지의 삶을 단지 희생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그 자신만의 치열한 인생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므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교차편집은 관객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런던으로 떠나는 빌리와 탄광으로 내려가는 아버지의 교차편집을 통해 균열을 꾀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빌리의 공연장에서 아버지의 눈물은 우아한 백조가 된 빌리의 비상과 교차편집 된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빌리의 성공적인 삶, 단지 개인의 만족으로 남을 아버지의 삶. 드라마투르기적으로 빌리의 비상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여운을 만들겠지만, 여기에는 빌리의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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