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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더 퀸>을 보면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사유지에서 휴가를 즐기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홀로 운전하다 강에 빠지는 씬인데, 여기서 감독은 여왕이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불현듯 버즈 아이 뷰 쇼트로 넓은 초원지대를 지나고 있는 차(여왕이 운전하고 있는)를 보여준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편집기법이었지만 앞뒤 스토리와 맞물리면서 내겐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불러 일으키며 그녀-여왕의 심리 혹은 감독이 여왕을 바라보는 시점,관점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여왕의 외로움이다. 넓은 초원지대는 그녀가 통치하는 땅, 나아가 영국을 가리키는 듯보이지만, 그녀는 혼자라는 것. 군주로서의 위엄을 지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녀는 한낱 외로운 여성이라는 것. 그녀가 지키려는 것들, 영토, 왕가의 위엄은 이제 국민의 위태로운 지지에 기댄 과거의 유물일 뿐이며 오히려 그것은 웃음거리, 조롱거리일 뿐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부인이 보여주는 노골적인 냉소는 이를 집약해준다. 또한 토니 블레어에게 왕가는 고집불통의 노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자신의 정치노선을 위해 필요한 조연일 뿐이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이후의 장면에서 강물에 빠지는 여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슴을 같은 장면에 등장시킨다. 이는 좀 환상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여왕이 사슴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미 여왕은 그럴 힘이 없다. 사슴이 국민 혹은 다이아나 비를 연상시킨다면, 여왕은 그들 모두를 보호하는데 실패한다. 그녀는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며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그녀에게 국정을 보고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미비하다.
하지만 이 영화 <더 퀸>에서 스티븐 프리어즈의 관심은 정치성에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여인으로서의 여왕의 일상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쩐 면에선 그녀는 <갇힌 여인>이다. 그녀는 왕궁에 갇혀 있고, 왕가의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있으며, 또한 국민들의 시선에 갇혀 있다. 그녀는 시선의 감옥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녀가 원한 것이기도 하다. 운명적으로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왕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바램, 탈출의 바램, 자유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왕이 홀로 운전하는것은 항상 방해받거나 실패한다.
그녀와 반대항에 서있는 여인이 바로 다이아나 황태자비다. 이미 죽은 상태로 등장하는 다이아나비를 감독은 굳히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다이아나의 모습은 항상 TV브라운관이나 기록영상으로만 등장(배우들에 의해 재현되지 않는다)한다. 그리고 여왕은 항상 자유롭고 발랄한 그녀를 응시한다. 나는 여왕의 눈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TV로 향하도록 연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이아나는 여왕이 스스로 저 깊숙한 심연에 억눌러 놓고 있는 감정을 대리 표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다이아나는 <벗어난(?) 여인>이며, 여왕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존재이며, 여왕의 감금을 드러내는 더욱 부각시키는 인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누가 더 잘났다 못났다라는 판단이 개입해선 안될것 같다. 왜냐하면 그 선택은 그녀들 스스로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작품속에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군주로서의 여왕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인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중점을 둔다. 여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손자들의 심리상태를 그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강조한다. 또한 시대의 요구를 여왕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는 태도의 변화를 주목한다. 왕가의 전통을 고집하는 동안 감독은 그녀를 비난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편집하고, 여왕이 변화의 모습을 보일때 꽃을 주는 어린이의 모습을 편집함으로써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긴 하지만 다이아나의 장례식에서의 모습과 엔딩을 통해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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