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고 저예산이지만 꽤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호러물은 볼 때마다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우선은 어둡고 습한 듯한 화면모양새가 그렇고(저예산일 경우 더 심함), 어떤 감독들의 경우 지나친 고어를 즐기며(이 분야는 정말 적응 안됨), 나아가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초현실적 요소들(귀신, 유령, 흑마술등등)이 뭔가 불안한 심리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호러영화에서의 '무서움'의 원천이 신체훼손등의 고어보다는 과학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비합리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합리성이란게 인간의 이성이 현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그로 인해 세상이 생각했던 대로 움직인다는 안도감-즉, 나에 대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준비-을 느낄 수..
나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뮤지컬 말이다. 하긴 기억을 떠올려 보면 초등시절 7인의 신부를 보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잠도 자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도 있었다. 예전에 회사 퇴근 후 그냥 시간이나 때우기 위해 혼자 회사 근처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스타식스 정동이라는 극장에서 혼자 봤던 니콜 키드만과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물랑루즈를 보다가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칠 뻔했었다.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배우들과 같이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엉덩이에 힘주느라 힘들었던 기억도 있네?^^ 그날 엉덩이가 절로 의자에서 일어나 마구 마구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과 오버랩 되는 걸 상상하며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옛날 스..
깃털처럼 가볍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한편의 코미디영화라고 정의하고 싶어진다. 한동안 우디 알렌의 영화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의외로 그의 범죄시리즈는 늘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옆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부부의 이야기인 이나 등은 우디 알렌 영화로서는 별다른 평가를 못 받고 있지만, 내겐 재미있었던 우디 알렌 영화였다. 를 보는 내내 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살인이라고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하며 범인을 찾는 플롯이 유사했고, 그 스타일적인면에서 범죄를 밝혀내는 꽉 짜여진 구조보다는 좌충우돌 슬랩스틱식으로 가볍게진행한다는 점도 유사하게 생각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름이 떠오른건 누명쓴 사람, 오인된 사람등 히치콕적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영화서적들에서 늘 말하는..
막스 오필스 감독의 짧은 단편소설 같은 이 러브스토리는 장편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는 한 여인의 짝사랑의 기록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졌던 한 여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신파 영화속의 리자(조안 폰테인)라는 여주인공이 단순히 사랑의 희생양이라거나 바람둥이 남자 때문에 신세 망친 피동적인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주체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여자로서 말이다. 리자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자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편지를 쓰며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결코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멋진 여자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년의 피아니스트 브랜트(루이 주르당)는 누군가와 사건에 연루되어 새벽의 결..
개츠비의 죽음은 순수의 죽음이었을까? 낭만적 사랑의 아쉬운 작별인사였을까?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의 사랑도 데이지(미아 패로)의 사랑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체제에 속한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말을 되새김질 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랑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단어에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물 불 안 가리고 했던 돈벌이와 데이지가 남편 톰의 돈다발에서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낭만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각자 생각하는 행복이 달랐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사랑이라는 고전적 낭만과 돈이라는 현대적 낭만의 격돌에서 어떤 것이 더 순수한지 한판 샅바싸움에 들배지기 한판의 승부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
내친 김에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를 좀 더 보기로 했다. 처음 접했던 에 대한 약간의 실망을 상쇄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해롤드 로이드에게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올레TV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3편의 해롤드 영화 중에서 1928년 작품인 를 보기로 했다. 1928년이라는 시간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1927년 가 개봉되면서 영화는 사운드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할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또한 무성영화가 그 영화문법을 거의 최고의 완성도로 보여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르나우의 같은 걸작을 생각해 보라. 역시 무성영화로서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스토리도 그렇고, 촬영, 편집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한..
해롤드 로이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다만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고층건물의 시계바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진은 아주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성룡이 자신의 영화 에서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하기도 했고 그 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 나도 이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긴장감 있게 연출되어 있기는 하더라.대신 나는 이 영화의 첫 시퀀스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해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남자가 있다는 자막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리스장면으로 침울해 보이는 한 남..
영화가 시작되면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은 질문을 받는다. 백인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야만 했던 심정에 대해서. 에이블린은 그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지만 그녀의 가슴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순 없다. 더군다나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의젓하게 큰 아들이 백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백인의 아기를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 남부 미시시피주에 살고 있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가장 비극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사랑으로 키운 백인의 아기가 커서 다시 자신(흑인)을 지독하게 차별하는 구조적 모순이야말로 영화 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렇다고 혹시 그녀들에게 왜 저항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말자. 영화속에서 그녀들이 느끼는 공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