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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미국영화

헬프 Help

구름2da 2018. 9. 3. 20:53



영화가 시작되면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은 질문을 받는다. 백인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야만 했던 심정에 대해서. 에이블린은 그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지만 그녀의 가슴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순 없다. 더군다나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의젓하게 큰 아들이 백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백인의 아기를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 남부 미시시피주에 살고 있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가장 비극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사랑으로 키운 백인의 아기가 커서 다시 자신(흑인)을 지독하게 차별하는 구조적 모순이야말로 영화 <헬프>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렇다고 혹시 그녀들에게 왜 저항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말자. 영화속에서 그녀들이 느끼는 공포는 행동을 주춤하게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차별보다 중요한 것이 한끼 밥이라는 것이 어쩌면 더 적절할 것이다. 공포정치는 인간의 사고를 묶어버리기 때문에 기득권자들에겐 가장 효율적인 통치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미국은 공포라는 토대위에 세워진 나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용기다.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헬프>가 감동적이라면 그건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엑스가 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작은 용기가 싹 틔운 움직임은 급격하게 물살을 바꾸지는 않지만 이미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운 물길은 길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헬프>는 무거워 보이는 내용과 2시간 2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몰입해서 본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헐리우드 영화가 얼머나 관객의 심리와 완급을 능숙하게 조절하며 내러티브를 구성하는가 하고 새삼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더 좋았던 건 잔인하다면 잔인한 내용이지만 유머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지니아(엠마 스톤), 에이블린, 미니(옥타비아 스펜서)가 낄낄거리며 만들어내는 불온한(?) 게임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미국에서의 흑백차별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 어쩌면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녀들을 응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헬프>는 혁명을 외치며 다 뒤집어 엎어버리겠다는 스파이크 리식의 혈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아마 적절하게 시대성과 사회비판의식을 반영한 드라마로서는 인정될 영화다. 스테레오타입화된 인물들이 감상에 자주 빠지는 여성취향과 헐리우드 고전적 스타일로 만들어낸 연출은 굳이 욕심을 내자면 아쉬운 점이지만 감독보다는 인물이 중요한 영화이니 그런거에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에이블리과 그 시절을 산 흑인들의 이야기지만, 백인인 유지니아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흑인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서 흑인들은 모순에 눈감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대부분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시대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백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흑인이 나서려면 말콤 엑스가 될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백인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헬프>는 에이블린과 미니의 용기, 유지니아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만들어내는 변화. 그것은 아마 존엄성을 갖춘 혹은 자각하기 시작하는 개인에 대한 찬사일수도 있을 것이다. 흑인의 이야기가 백인에 의해 서술된다는 것을 꼬집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에 좀 더 그들의 작은 희망에 동참해 같이 기뻐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 이 영화는 흑과 백을 분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흑과 백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에이블린은 진정으로 백인의 아기를 사랑했다. 자식을 내팽개치고 키워낸 백인의 아기가 자라서 다시 차별의 연쇄고리를 만들더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이제 그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영화는 에이블린이 자신을 찾는 아기를 놓아두고 집을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에이블린은 극복했다. 미니는 마음이 통하는 백인친구를 만났다. 흑백으로 분리되지 않는 세상은 그래서 따뜻하고 희망이 있다. 희망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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