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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로이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다만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고층건물의 시계바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진은 아주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성룡이 자신의 영화 <프로젝트 A>에서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하기도 했고 그 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 나도 이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긴장감 있게 연출되어 있기는 하더라.대신 나는 이 영화의 첫 시퀀스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해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남자가 있다는 자막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리스장면으로 침울해 보이는 한 남자(해롤드 로이드)가 보인다. 창살처럼 보이는 뭔가가 전경에 드리워져 그 남자를 가두고 있고, 그 앞에서 여자 두명이 애처로워하고 있다. 잠시 후 남자 옆으로 경찰로 보이는 사람과 신부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후경에는 교수대처럼 보이는 동그란 고리가 보인다. 시간이 되어 남자와 그 외 사람들이 교수대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컷 되면 분위기 자체가 바뀌면서 그 장면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남자를 배웅하기 위해 역으로 온 것임을 알게 된다. 목을 매달 것 처럼 보였던 그 동그란 고리는 바로 옛날에 열차 운행 표시로 사용되던 고리였다.
사실 이 장면은 뭔가 의미를 만들기 내는 연출이기보다는 ‘깜짝 놀랐지’ 하는 서프라이즈를 위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흑인여자와의 에피소드도 짧지만 꽤 재미있었다. 슬랩스틱으로 말하는 무성 코미디영화의 재미를 잘 나타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라면 도시에 온 해롤드 로이드와 룸메이트가 월세를 독촉하러 온 여주인을 피하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옷 속에 숨는 장면도 참 기발해서 좋았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출근전쟁, 백화점으로 찾아온 애인을 속이기 위한 기발한 상황연출. 시계탑이 있는 빌딩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의 긴장감까지. 그런 장면들 속에서 <마침내 안전>은 1920년대 당시의 미국의 모습을 소소하게 재현하고 있고, 나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마침내 안전>은 딱 거기까지인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 한편만 가지고 해롤드 로이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르겠지만, 왜 그가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이 올랐던 만신전에는 오르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해롤드 로이드는 박봉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적 미국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생김새도 세 사람 중에서는 가장 평범하니 말이다. 하지만 해롤드 로이드가 보여주는 삶속에는 웃음은 있지만 채플린의 영화를 볼 때 느끼게 되는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 페이소스가 부족하지 않나 싶었다. 더불어 빌딩을 올라가거나 아니면 이런 저런 액션을 보여주지만,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보며 느끼는 아크로바틱한 박진감은 느끼지 못한 편이다. 즉, 뛰어난 코미디언이었지만 웃음과 액션을 통해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하는 능력면에서는 채플린이나 키튼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두루뭉실했다고 할까? 그래서 해롤드 로이드는 동시대의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다음에 설 수 밖에 없구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를 좀 더 볼 기회가 있다면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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