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접근하기 위해 꿈이라는 모티브를 자주 활용했다. 에서 늙은 교수는 꿈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랑과 증오같은 당시의 감정을 되풀이 겪곤 한다. 영화 안에서 이런 행위들은 인물의 트라우마의 근원으로 찾아가서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하면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나아가 스웨덴 영화의 표상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 서정적이고 연극적인 스타일이 50년대 스웨덴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냈다면, 특수효과 기술이 진일보한 현대에는 스웨덴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기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있는 듯한데 그가 을 만든 만스 말린드와 뵤른 스테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
영화에서 라일라의 심리는 중요하다. 그녀는 남자라는 속성에 대해 환멸적이다.그래서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못하고, 그저 정사에 탐닉한다. 표피적이고 즉각적인 오르가즘이라는 실제만 믿는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할 정도로 그녀는 스스로의 쾌락에 능동적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데이빗을 만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정한다.반면 그에 따르는 구속을 그녀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데이빗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그걸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여기서부터 조금씩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라일라와 데이빗의 싱싱한 젊음의 나신과 정사에의 집착은 한시절의 방황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감독은 라일라 부모의 황혼이혼, 데이빗 아버지의 쇠락한 나신을 보여주..
는 접하기 힘든 말레이시아에서 온 액션 영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설정들이 있는데, 타잔을 연상시키는 에짐이라는 존재. 격투장면에서 사용된 무술도 90년대 홍콩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스토리는 솔직히 말하면 낡았다고 할 정도로 진부한 편이다. 출생의 비밀 같은 반전의 묘미도 갑작스러워 임팩트가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본 후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툼비루오란 전설로 내려오고 있는 정글을 지배하는 수호자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가 살아있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범죄로 태어난 아이는 죽음 직전에 여사제에 의해 구조되어 정글로 보내져 숲의 정령에 의해 양아버지에게 키워진다. 흉측한 외모를 가진 탓으로 괴로힘을 당하던 어느날 양아버지는 가면을 씌워주며 사랑을 가르치며..
막스 오필스 감독의 짧은 단편소설 같은 이 러브스토리는 장편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는 한 여인의 짝사랑의 기록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졌던 한 여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신파 영화속의 리자(조안 폰테인)라는 여주인공이 단순히 사랑의 희생양이라거나 바람둥이 남자 때문에 신세 망친 피동적인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주체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여자로서 말이다. 리자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자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편지를 쓰며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결코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멋진 여자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년의 피아니스트 브랜트(루이 주르당)는 누군가와 사건에 연루되어 새벽의 결..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있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아키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늙은 교수 와타나베. 그리고 아키코의 남자친구 노리아키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별 다른 내용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지난 작품인 에서도 다루었듯이 최근에는 진짜와 가짜사이의 어떤 경계점을 탐색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첫 번째. 아키코는 하룻밤 사랑을 흉내 내면서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랑을 연기한다. 하지만 씬이 길게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 아키코는 솔직히 이런 거 하기 싫다고 말해버린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두 번째. 옛 제자의 주선으로 어쩔 수 없이 아키코를 만나게 된 은퇴한 늙은 교수 와타나베. 물론 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의를 거절한 ..
개츠비의 죽음은 순수의 죽음이었을까? 낭만적 사랑의 아쉬운 작별인사였을까?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의 사랑도 데이지(미아 패로)의 사랑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체제에 속한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말을 되새김질 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랑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단어에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물 불 안 가리고 했던 돈벌이와 데이지가 남편 톰의 돈다발에서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낭만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각자 생각하는 행복이 달랐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사랑이라는 고전적 낭만과 돈이라는 현대적 낭만의 격돌에서 어떤 것이 더 순수한지 한판 샅바싸움에 들배지기 한판의 승부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
안타까운 사랑이 있는 호러 영화를 보고 싶다면 묵시록영화라면 멜 깁슨이 출연했던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묵시록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꼭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일 필요는 없다. 세상이 파괴된 이후다 보니 사막을 배경으로 간단한 소품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충분히 저예산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소재라는 것이다. 마티유 투리 감독의 역시 이런 저예산을 활용한 영화였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과거는 세상이 망하기 이전이다. 마약 중독자 줄리엣과 돈 많은 미술상 잭과의 만남. 그들의 사랑의 여정이 주요한 이야기다. 잭의 희생과 헌신으로 줄리엣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임신한다..
내친 김에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를 좀 더 보기로 했다. 처음 접했던 에 대한 약간의 실망을 상쇄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해롤드 로이드에게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올레TV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3편의 해롤드 영화 중에서 1928년 작품인 를 보기로 했다. 1928년이라는 시간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1927년 가 개봉되면서 영화는 사운드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할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또한 무성영화가 그 영화문법을 거의 최고의 완성도로 보여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르나우의 같은 걸작을 생각해 보라. 역시 무성영화로서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스토리도 그렇고, 촬영, 편집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