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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하룻밤 같이 있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아키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늙은 교수 와타나베. 그리고 아키코의 남자친구 노리아키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별 다른 내용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지난 작품인 <사랑을 카피하다>에서도 다루었듯이 최근에는 진짜와 가짜사이의 어떤 경계점을 탐색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첫 번째. 아키코는 하룻밤 사랑을 흉내 내면서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랑을 연기한다. 하지만 씬이 길게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 아키코는 솔직히 이런 거 하기 싫다고 말해버린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두 번째. 옛 제자의 주선으로 어쩔 수 없이 아키코를 만나게 된 은퇴한 늙은 교수 와타나베. 물론 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의를 거절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젊은 여자의 속살을 만져볼 기대와 불같은 하룻밤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점잖은 체면에 잠들어 버리고 만 아키코를 아쉽지만 그냥 내버려둔다.


세 번째. 진실한 사랑을 원하는 아키코의 남자친구 노리아키가 있다. 그는 와타나베에게 결혼하면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그건 경험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와타나베는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진실처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키코와 와타나베는 거짓으로 할아버지와 손녀의 연기를 한다. 수다쟁이 이웃집 아주머니도 그들을 그렇게 본다. 어쩌면 세상은 그들을 정말 그렇게 볼지도 모른다


세상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연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람들의 눈에 아름다워 보였던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는 실상 창녀와 고객의 관계였던 것이지 않나. 이것은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 세계다. 거짓의 세계는 진실과 맞닥뜨릴 때 쉽게 그 치부를 보여준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책을 쓰고, 제자를 길러 낸 교수는 그만 자신의 속물근성 때문에 주저앉아 버린다. 온통 유리창과 거울로 채워진 그의 방은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자신의 속물성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만든 집처럼 그의 속물성은 은연중에 세상에 드러난다. 거울은 그의 내면을 투사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걸 깨부수기로 결심한다. 와타나베의 위선을 알아버린 노리아키는 배신감에 그의 집 유리를 깨버린다. 위선을 감출 벽이 무너졌을 때 와타나베는 힘없이 주저 앉아 버리고 영화도 끝이 난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도 진실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위선밖에 없다면,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삭막한가? 노리아키가 중졸이지만 스스로 경험을 통해 돈을 벌고 진실된 사랑을 위해 여자친구의 허물까지 감싸 안으려 할 때, 대학교수에 책을 여러권 쓰고 강연을 하는 위대한 지성인 와타나베는 위선과 위악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영화는 벌벌 떨며 어쩔 줄 모르는 위대한 지성의 쩔쩔매는 모습으로 문을 닫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만들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투자자가 없어 일본으로 변경했다는 소문이 있다. 아깝다. 제작비를 많이 들일 영화도 아니던데, 그 정도 돈을 투자해줄 높은 안목의 부자들과 제작자가 이 나라에 없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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