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화에서 라일라의 심리는 중요하다. 그녀는 남자라는 속성에 대해 환멸적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못하고, 그저 정사에 탐닉한다.

표피적이고 즉각적인 오르가즘이라는 실제만 믿는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할 정도로 그녀는 스스로의 쾌락에 능동적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데이빗을 만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정한다.

반면 그에 따르는 구속을 그녀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데이빗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그걸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여기서부터 조금씩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라일라와 데이빗의 싱싱한 젊음의 나신과 정사에의 집착은 한시절의 방황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감독은 라일라 부모의 황혼이혼, 데이빗 아버지의 쇠락한 나신을 보여주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것은 사랑의 종착역과 인간의 종착역,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인생 뭐 별거 없다는 것인가? 라일라에게 정사는 어쩌면 자아 찾기의

지독한 통과의례였는지 모른다.

사랑 없는 정사가 한낱 포X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X노를 보며 자위하는 라일라의 모습에서 시작한 영화는 포X노를 보며

자위하는 것을 지겨워하는 라일라의 모습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추구했던 사랑없는 정사는 결국 사랑을 인정하고픈 그녀의 반항이었다.


이렇게 달려온 내러티브의 종착역은 결혼이며, 제도에의 투항이다.

라일라의 사촌의 결혼장면에서 헤어졌던 라일라와 데이빗은 다시 결합한다.

더구나 이 결혼식, 보수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유대인의 결혼식이다.

결국 라일라의 방황의 끝은 헤게모니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던가?

감독도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실망스런 영화다. 아무리 관객들이 자신이 속한 헤게모니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영화에서는 일탈의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질서에 투항하는 영화들만 보다 보면 좀 지루해진다.

특히 이처럼 스타일적으로 파격적인 영화라면 내러티브의 대담성도 같이

기대하게 되는건가 보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