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이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다만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고층건물의 시계바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진은 아주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성룡이 자신의 영화 에서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하기도 했고 그 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 나도 이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긴장감 있게 연출되어 있기는 하더라.대신 나는 이 영화의 첫 시퀀스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해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남자가 있다는 자막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리스장면으로 침울해 보이는 한 남..
실험영화 혹은 아방가르드 영화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대화나 미장센에서 의미를 길어올려야 한다. 스토리도 인과에 기대기보다는 즉흥적인 면이 많아서 역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이 영화를 만든 데라야마 슈지 감독은 그런 장르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니 더욱 생각을 많이 해야 이 영화의 의미를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머리 쥐어 뜯으며 무슨 의미지? 생각해 봤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보자 했다. 40여분의 러닝 타임의 중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 버리고 그저 감독이 보여주는 화면만 보자 했다. 그래도. 화면만 본다고 해도, 어디 머리속이 내 맘대로 무조건 편해지지는 않았다. 그..
애나(샤롯 램플링)는 할머니다. 할머니 애나는 영화가 시작되면 사이먼이라는 남자에게 전화한다. 에미와 키아라와 밥 먹자고. 하지만 곧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지 망연자실해지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후에도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거는 장면은 몇 번 더 나온다. 하지만 비가 내리거나 앵글이 기울어져 있거나 부스밖에서 잡히거나 어쩄든 왠지 불안한 기운을 내포하는 영상으로 연출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이런 것들이 복선으로 기능함을 알게 된다. 그렇게 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할머니 애나의 이야기다. 그녀는 진실된 사랑과 관계를 갈구하는 여자다. 그녀는 싱글의 밤이라는 파티에서 조지를 만난다. 친절한 듯 보이지만 음흉한 눈길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다. 그리고 조지는 시체로 발견된다. 이제 영화는 조지를 살해한 범인..
영화가 시작되면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은 질문을 받는다. 백인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야만 했던 심정에 대해서. 에이블린은 그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지만 그녀의 가슴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순 없다. 더군다나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의젓하게 큰 아들이 백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백인의 아기를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 남부 미시시피주에 살고 있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가장 비극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사랑으로 키운 백인의 아기가 커서 다시 자신(흑인)을 지독하게 차별하는 구조적 모순이야말로 영화 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렇다고 혹시 그녀들에게 왜 저항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말자. 영화속에서 그녀들이 느끼는 공포는 ..
감독의 이름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해서 별 볼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감독의 이름을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는 있다. 얼마든지. 그런 영화다. 는. 뭐, 산다는 게 그런거 아니겠나. 미치고, 바보같고, 사랑도 하는 것.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인생의 깊이를 통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또 한번 오산. 머리 아프지 않다. 철학책을 보고 있는 건가 하품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작위적일 뿐, 우연성의 남발이. 그냥 정신없을 뿐, 뒤죽박죽된 스토리가. 그런데 미소 짓고 있을 뿐, 즐거워서. 하나만 더, 좋아하는 배우까지 덤으로 나와서. 는 감독이 하나도 안 궁금한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재미는 곧 잊혀질 거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킬링 타임은 괜히 있남. let me see... 칼과 에밀리는 40대 중..
를 극장 개봉시에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10여년만에 다시 DVD를 꺼내들고 재감상 했다. 그때 보지 못했던 것. 여러 가지가 다가오면서 그때 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단지 넘치는 재능의 빌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발레학교에 입학해 성공한다는 것이 아님을. 물론 그런 성장담만으로도 많이 감동적이지만, 이번에는 나무 대신 좀 더 넓은 숲을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넓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재감상을 통해 보았던 건 빌리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이었고, 좀 더 나아가 춤선생과 마을 사람들 전체였다. 간단히 말하면, 재능으로 똘똘 뭉친 빌리의 성공 뒤에 단순히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다는 식의 관점은 약간은 표피적인 접근으로 보였다. 먼저..
장 피에르 멜빌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뼛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파는 영상이 주특기라고 할만큼 그동안 내가 본 그의 영화의 느낌은 아랑 드롱의 잘생긴 얼굴에 고독이 조각칼이 되어 주름살을 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후반기의 작품에서는 고독이 그 자체로 주제가 되어 장르를 아우르고 있을 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의 이런 성향은 지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 을 보면서 한번 더 느껴본다. 물론 후기작만큼 고독이 사무치진 않지만 그래도 그 정서는 짙은 커피향같은 여운으로 공기속을 떠돈다. 2차대전중인 프랑스의 시골마을.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전쟁은 배경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부인 바르니가 재미없는..
주인공은 왜 무한루프속으로 스스로 뛰어드는가? 2009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IPTV가 아닌 극장에 정식으로 개봉되었다는 건 입소문이 상당히 높다는 걸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의 이 바로 그런 영화다. 이미 호러영화팬들 사이에서는 꽤 괜찮은 작품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은 특정시간이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다. 그런데 왜 영화 속 인물들은 일종의 지옥으로 말해지기도 하는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는 걸까? 이 영화 역시 주인공 제스가 왜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영화다.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무한루프의 처음이 아니라 이미 상당히 반복된 후의 중간지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한루프는 왜 제스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