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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영화 혹은 아방가르드 영화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대화나 미장센에서 의미를 길어올려야 한다. 스토리도 인과에 기대기보다는 즉흥적인 면이 많아서 역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이 영화를 만든 데라야마 슈지 감독은 그런 장르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니 더욱 생각을 많이 해야 이 영화의 의미를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머리 쥐어 뜯으며 무슨 의미지? 생각해 봤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보자 했다. 40여분의 러닝 타임의 중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 버리고 그저 감독이 보여주는 화면만 보자 했다. 그래도. 화면만 본다고 해도, 어디 머리속이 내 맘대로 무조건 편해지지는 않았다. 그러게 영화가 어디 화면만 보는 것이던가? 스토리도 같이 보는 것이거늘… 결국 몇 가지 의미를 나름대로 내 머리가 생각해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아키라라는 남자가 어떤 여자가 부르는 동요(?)의 의미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맨다. 그러다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보니 그 노래는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다. 자상했던 어머니. 하지만 그 어머니는 남편과 간통한 하녀를 10년 동안 광에 가둔 여자이기도 하고, 반쯤 미쳐버린 그 여자의 유혹에 넘어간 아들을 나무에 꽁꽁 묶어 벌을 줄 수 있는 여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 아키라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래도 아들은 아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먼저 떠오른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들의 나신을 부끄럽게 바라보는 어머니. 아들이 여자를 알게 되자 노여워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제 어른이 된 아들 아키라는 여전히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어머니는 아들의 거대한 트라우마가 되어 건재함을 과시한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여전히 아들은 노래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데라야마 슈지 감독이 보여주는 영상미도 좋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다. 잔잔하게 강한 이미지라고 할까? 한 낮의 태양이 비추는 사막과 같은 곳을 걸어가는, 뛰어가는 아키라. 혹은 기모노를 입고 양산을 든 채 걸어가는 여인의 이미지다. 아마 백사장이겠지? 하지만 사막처럼 보인다. 마음의 사막, 건조한 곳. 공놀이가 벌어지는 환상장면에서 어머니의 머리가 공처럼 뒹구는 것은 두샹 마카베예프의 <유기체의 신비>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고, 김기영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세번째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의 이미지와 스토리 괜찮았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영화다. 그 이미지에 더 깊은 의미가 숨어있겠지? 하지만 나는 피곤해서 더 이상 생각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다. 재미있었지만 이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많이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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