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골드스톤 감독의 77년 작품 가 1980년에 우리나라에 개봉되면서 제목이 로 바뀌었다. 부라디 썬데이라니… 블러디 선데이라는 뜻일텐데… 그래도 어떻게 보면 참 정겹다. 정말 70년대스러운 제목이라고나 할까… 한 젊은이가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에 폭탄을 설치해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안전검사관 해리 콜더와 형사 호잇이 사건을 조사한다. 젊은이는 해리를 통해 백만불을 요구한다. 머리 좋은 젊은이가 경찰을 따돌리고 백만불을 인수하지만, 그 돈에 추적장치가 된 것을 확인한 후 새로 개장하는 신형 롤러코스터에 폭탄을 설치한 후 다시 백만불을 요구한다. 해리는 형사와 함께 젊은이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젊은이는 롤러코스터에 치여 죽는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서스펜스를 설명하면서 탁자 밑에 ..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1939년 작품 은 프랑스의 영화 사조였던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중의 한 편이다. 순수하고 성실한 청년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염세적인 세계관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랑소와(장 가방)는 발랑탱을 총으로 쏘고 만다. 프랑소와는 그의 좁은 방에서 왜 발랑탱을 죽이게 되었는지 회상한다. 이웃의 신뢰를 받는 성격 좋은 공장노동자인 프랑소와는 우연히 꽃 배달을 온 프랑소와즈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프랑소아를 사랑하면서도 마술사인 발랑탱 역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망한 프랑소와는 발랑탱의 조수이자 애인이었던 클라라와 만난다. 비열한 성품의 발랑탱은 프랑소아즈를 ..
커다란 새에 의해 사람들이 잡혀가 끔찍하게 죽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이즈음 지미 퀸은 동료 두명과 보석강도를 계획하고, 보석을 훔친 가방을 들고 도망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쫓기듯 어느 빌딩의 옥상까지 올라간 그는 거대한 알이 있는 둥지를 발견한다. 퀸은 경찰에게 새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신 돈을 요구한다. 이 거대한 새는 고대 아즈텍의 종교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광신도가 그를 몇 세기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고자 한다. 퀸의 제보로 경찰은 거대새를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른 장소에 있던 둥지에서 새끼 새가 태어난다. 감독 래리 코헨은 로빈 우드의 책 에서 평론을 읽었던 관계로 익숙한 이름이다. 그의 감독 작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보게 된 작품이다. 괴수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
스스로 복수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사위를 둔 평범한 건축가 폴 커시. 동네 건달의 폭력으로 아내가 죽고, 딸아 강간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는 경찰이 범인을 잡아주길 기대하지만, 경찰은 매일 수백건씩 일어나는 강도사건의 하나로 생각할 뿐이다. 어쨌거나 폴은 다시 삶을 영위하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사업차 만난 사람에게 총을 선물 받게 된다. 딸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직접 총을 들고 거리의 강도들을 처단한다. 그의 이름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한다. 경찰은 그를 체포하는 대신 뉴욕을 떠나게 한다. 찰슨 브론스과 마이클 위너 감독의 협력작 중 은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다. 비디오 제목인 은 우리나라에서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
굿모닝 에브리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살짝 미소짓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감성이 살짝 메말라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한번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어디서 본 듯한 닳고 닳은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살짝 예매사이트의 클릭질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초보 프로듀서에다가 경영합리화라는 명목하에 단번에 짤리기도 하고 백수생활에 이러저리 이력서 넣고 핸드폰 돌리기 신공이 거의 명불허전의 수준이 될 때 시청률이 바닥의 먼지가 친구하자고 달려들기 일보직전의 새벽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요청마저도 감지덕지로 받아들이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세월이 흘러 얼굴에 주름이 깊이를 모르는 인기 떨어진 왕년의 스타 앵커를 모시느라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잔잔하지만 가슴 한쪽이 묵직해지는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이 구로자와 기요시다. 기요시는 공포영화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드라마 장르도 잘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그의 영화는 공포영화이든 드라마든 공통적으로 느껴지는건 건조함이다. 진짜 나뭇잎이 바짝 말라버린 것 같은 건조함이 프레임을 뚫고 삐져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밟았을 때의 바스락거림과 바짝 마른 낙엽조각들처럼 그렇게 인물들의 삶은 영화속에서 부서져 내리는 것이다. 는 공포영화가 아니어서 인지 그 건조함이 좀 더 내밀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장르가 드라마라서인가 그건 오히려 스산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건조함과 스산함. 뜻이야 어떻든 영화속 4명의 가족과 그 주변인들의 삶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각박한 현실속에 ..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는 두 개의 스토리가 주축이 된다. 첫번째는 별 볼일은 없지만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 월터가 짝사랑하고 있는 직장 동료 셰릴과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두 번째는 라이프 잡지사의 현상부서에서 일하는 월터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두 개의 스토리라인은 서로 얽혀 들면서 월터가 셰릴과 사랑을 이루게 되는 과정에서 숀 오코넬을 찾아가는 여정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우선 그 여정은 셰릴과 월터가 엮일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멍때리기의 고수 월터가 숀 오코넬을 찾아 다니면서 수많은 난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나란 누구인가’라는 명제, 즉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이 여정을 위해 영..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를 보고 나면 마음이 잔잔해지면서 편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쳇바퀴 돌아가듯 흘러가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삶에서 한번쯤은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것을 꿈꾸어보자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 말이다. 분명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라는 공간 속에서만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 꿀 권리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꿈은 계속 실마리를 찾아 타래를 만들고, 그런 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믿음이 조금씩 쌓여간다. 그런 상상이야 말로 어쩌면 먹고 살기 위한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잠시 동안의 일탈이 되어 휴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꿈을 상상해보는 것. 그래서 현실의 삶에 좀 더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