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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에브리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살짝 미소짓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감성이 살짝 메말라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한번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어디서 본 듯한 닳고 닳은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살짝 예매사이트의 클릭질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초보 프로듀서에다가 경영합리화라는 명목하에 단번에 짤리기도 하고 백수생활에 이러저리 이력서 넣고 핸드폰 돌리기 신공이 거의 명불허전의 수준이 될 때 시청률이 바닥의 먼지가 친구하자고 달려들기 일보직전의 새벽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요청마저도 감지덕지로 받아들이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세월이 흘러 얼굴에 주름이 깊이를 모르는 인기 떨어진 왕년의 스타 앵커를 모시느라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여전히 바닥의 먼지와 너무 사이가 좋아서 폐지되기 일보직전까지 밀려야 되는 상황을 겪는 것. 직장 생활 조금만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 전형적이야를 연발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몰래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그런 영화다


그러므로 <굿모닝 에브리원>은 영화적 황홀경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이 의례 그럴 것이라는 모든 예상을 너무 친절하게 반복학습 시켜줌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살자꿍 미소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여자라서 여자만 감정이입 되는 건 아니냐고? 그렇진 않겠지. 남자라고  발바닥에 땀 안나는거 아니니 뭔가 좀 특별한 놈 아닌 이상 이렇게 발발거리며 정신없이 뛰어 다니기는 마찬기지 아니겠는가그래도 감정이입이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로저 미첼 감독의 <굿모닝 에브리원>이라는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다. TV드라마와 별다르지 않는 스타일로 TV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온 캐릭터들이니 말이다. 다만 영화 외적으로 관심이 가는 건 있었다. 그것은 영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각본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작가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마지막 결말에서 앤 헤서웨이가 가난한 남자친구에게 돌아가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반복하는 <굿모닝 에브리원>에서의 결말을 보면서 문득 내가 영화속에서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너무 계약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만 보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자본주의 사회를 다루는 영화이므로 그렇게 끝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천민 자본주의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꼭 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살벌한 경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필요가 없을수도 있다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감독의 연출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네오 리얼리즘을 표방한 것도 아니고, 좌파 다큐멘터리같은 시각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영화에서 관계를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다룬다면 그건 현대가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하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런 공간과 소재가 아니라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을 다룬 영화에서 따뜻한 인간관계를 다룬다면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깨닳으면서 내가 모더니즘 영화에서 학습한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서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본 델버트 만 감독의 <연인이여 돌아오라>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초보 프로듀서 비키는 주위에 있는 남성들로부터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 도움은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또한 결론도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결합으로 매듭짓지 않는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베키가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성공하는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역시 꽤 재미있는 40년 전의 작품 <연인이여 돌아오라>에서 베키와 비슷하게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진 캐롤 템플턴이 어떻게 일에서 밀려나 남자의 품으로 들어가게 되는지와 비교하면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이런 점은 로저 미첼의 이전 작품들과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도 있다. 어쨌든 <굿모닝 에브리원>은 영화적으로 훌륭한 성취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미세하지만 균열을 만들어내는 지점은 갖추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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