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강스 감독의 재미있는 호러영화 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건에 개입하게 만드는 입양된 딸, 딸을 찾아 폐허가 된 마을 '사일런트 힐'로 들어가는 엄마, 엄마를 돕는 여자 경찰, 마을 광신도들을 이끄는 여자목사는 사건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아우른다. 마녀사냥이라는 중세적 억압을 여전히 수행하는 여목사는 당시의 질서를 만들어낸 남성들의 원초적 폭력의 충실한 이행자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그녀는 제거되어야 하고, 사건은 엄마와 여경찰에 의해 해결되어간다. 남편의 부재가 심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이 폭력의 연쇄고리가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남편/남성은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사일런트 힐은 지옥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그곳에서 빠져나온 엄마 로즈..
는 80년대에 에로와 추리를 적당히 섞어 영화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다. , 의 김성수 감독과는 동명이인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는 자본에 물들어 타락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팜므 파탈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에서 영향을 받은 듯 한 여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떠나는 장면까지. 반전에 반전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뭔가 극적으로 제시되지 못해서 어설픈 느낌이 나는 편이다. 가난 때문에 법대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진우. 애인의 뒷바라지도 헛고생이 되고 말았다. 이때 현마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며 진우에게 접근한다. 어느 재벌의 아들인 동훈과 닮은 그를 이용하여 재산을 가로채려 한 것. 진우와 현마 그리고 현마의 여자친구, 세 사람의 계획은 성..
깃털처럼 가볍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한편의 코미디영화라고 정의하고 싶어진다. 한동안 우디 알렌의 영화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의외로 그의 범죄시리즈는 늘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옆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부부의 이야기인 이나 등은 우디 알렌 영화로서는 별다른 평가를 못 받고 있지만, 내겐 재미있었던 우디 알렌 영화였다. 를 보는 내내 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살인이라고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하며 범인을 찾는 플롯이 유사했고, 그 스타일적인면에서 범죄를 밝혀내는 꽉 짜여진 구조보다는 좌충우돌 슬랩스틱식으로 가볍게진행한다는 점도 유사하게 생각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름이 떠오른건 누명쓴 사람, 오인된 사람등 히치콕적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영화서적들에서 늘 말하는..
유현목 감독이 1967년에 발표한 막차로 온 손님들은 통금을 앞두고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민(이순재)이 술에 취해 정신없이 헤롱헤롱 거리고 있는 보연(문희)을 보고 차마 거리에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어 자신이 겨우 잡은 택시에 동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곳 몰라 하는 그녀를 결국 자신의 집 소파에 재우게 되는 스토리로 시작한다. 여기에 동민의 병을 고쳐보려는 의사 친구 경석(성훈)과 부유한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재산을 노리는 주위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나이롱 정신병환자 세정(남정임). 가난하게 살다가 일본에서 얼떨결에 졸부가 되어 돌아온 친구 충현(김성옥)이 물쓰듯 돈을 쓰고 다니는 이야기가 보태지면 1967년도의 사회상이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김성훈 감독의 재미있더라. 한국영화에서 장르적으로 꽤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옆으로 새지 않고 한길로만 뚝심 있게 몰고 가는 내러티브가 좋더라. 김성훈 감독은 뭔가 메시지를 만들거나, 예술인척 노력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고, 이런 탈취장르(?)에서의 일정한 성취를 일궈낸 듯 하다. 부패한 경찰들간의 다툼이라고 할까? 누가 더 부패했나요? 결국 더 부패한 형사는 죽고, 덜 부패한 형사는 쫓겨나는데, 그 덜 부패한 형사는 그 많은 부패한 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의문 부호를 남기고 영화는 끝난다. 한번 보자. 어머니의 장례식날 우연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착각하게 되는 형사의 고군분투. 특히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함께 묻는 장면은 효 사상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이기욱 감독의 는 평이 안 좋아서 망작인가 보구나 했는데, 아니더라. 일단 생각보다는 괜찮다는 것. 뭔가 깔끔하게 진행시킨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지만, 살부라는 테마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문제와 청소년 문제를 무리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마무리가 좀 깔끔하다는 느낌이 없어서 아쉽지만 말이다. 먼저 이 영화에서 살인자는 바로 아버지다.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직접적인 살인자로서의 아버지가 있지만, 지수 아버지 캐릭터에서 보듯 간접적인 살인자도 있고, 영호를 괴롭히는 일진의 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라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키워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협(마동석)을 보자. 첫 장면에서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항상 그렇듯이 에서도 어머니와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항상 그렇듯이에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데, 이 어머니와 모성의 문제는 이후의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다. 90년대는 이런 주제보다는 이리저리 꼬인 애정문제를 화려한 미장센을 통해 풀어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 감독의 작품을 이런 저런 계보에 집어 넣으려 시도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전 작품인 은 2000년대 그의 작품 계보 보다는 오히려 80년대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레즈비언 수녀들의 난장판 이나 게이들의 난장판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어 좀 소홀한 경향이 있다. ..
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일본 오타쿠들에겐 꽤 유명한 모양이다. 1973년부터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라고 하니 그 역사도 꽤 오래되었고, 또한 풍부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드라마 구성도 꽤나 치밀한가 보다. TV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되어 2005년에 극장판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만화가라면 우라사와 나오키나 이토 준지정도 알고 있고, 애니메이션쪽이라고 해봐야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야키 정도나 알고 있는 내가 데츠카 오사무의 에 대해 '물론' 알리는 없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것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보는 습관 때문이었다. 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서 느끼는 재미나 오시이 마모루 영화에서 느껴질법한 철학적 포스는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