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감독의 는 희수(전도연)가 1년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빌려 주었던 돈 35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하루 동안 그와 동행하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종일관 희수가 350만원을 다 받을 수 있을까? 병운이 그 돈을 다 빌릴 수 있을까? 라는 일종의 서스펜스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정작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 돈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주요한 소재로 차용된 350만원이라는 돈은 히치콕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맥커핀인 셈이다. 그러니까 돈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는 대신 희수와 병운이 하룻동안 만나는 사람들의 양태, 주인공의 심리의 변화, 그리고 서울이라는 삭막한 도시 공간이 더 중요해지기 떄문이다. 일종의 돈을 찾아가는 로드무비라 할 만한 이 영화에서 이윤기 감독은..
이한 감독의 을 보고 나니, 의 성공의 여파는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의 정서라 할 그리움을 차용한 영화들이 몇 차례 개봉되기도 했고,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에 이르면 이제 힘을 다했다는 생각도 든다. 은 비슷한 정서를 시도했지만 가슴을 적시기 보다는 그저 신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포착한 전쟁 시기의 어린이 합창단이라는 소재 자체는 좋았다. 그들이 불러주는 맑고 고운 노래가 메아리가 되어 전쟁과 가난에 지친 극중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적셔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내러티브 구성이 너무 진부했다. 그래서 그 노래 소리가 마음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기존 한국영화에서 이러이러한 장면들을 조..
막스 오필스 감독의 짧은 단편소설 같은 이 러브스토리는 장편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는 한 여인의 짝사랑의 기록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졌던 한 여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신파 영화속의 리자(조안 폰테인)라는 여주인공이 단순히 사랑의 희생양이라거나 바람둥이 남자 때문에 신세 망친 피동적인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주체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여자로서 말이다. 리자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자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편지를 쓰며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결코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멋진 여자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년의 피아니스트 브랜트(루이 주르당)는 누군가와 사건에 연루되어 새벽의 결..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있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아키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늙은 교수 와타나베. 그리고 아키코의 남자친구 노리아키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별 다른 내용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지난 작품인 에서도 다루었듯이 최근에는 진짜와 가짜사이의 어떤 경계점을 탐색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첫 번째. 아키코는 하룻밤 사랑을 흉내 내면서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랑을 연기한다. 하지만 씬이 길게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 아키코는 솔직히 이런 거 하기 싫다고 말해버린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두 번째. 옛 제자의 주선으로 어쩔 수 없이 아키코를 만나게 된 은퇴한 늙은 교수 와타나베. 물론 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의를 거절한 ..
개츠비의 죽음은 순수의 죽음이었을까? 낭만적 사랑의 아쉬운 작별인사였을까?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의 사랑도 데이지(미아 패로)의 사랑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체제에 속한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말을 되새김질 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랑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단어에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물 불 안 가리고 했던 돈벌이와 데이지가 남편 톰의 돈다발에서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낭만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각자 생각하는 행복이 달랐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사랑이라는 고전적 낭만과 돈이라는 현대적 낭만의 격돌에서 어떤 것이 더 순수한지 한판 샅바싸움에 들배지기 한판의 승부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
안타까운 사랑이 있는 호러 영화를 보고 싶다면 묵시록영화라면 멜 깁슨이 출연했던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묵시록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꼭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일 필요는 없다. 세상이 파괴된 이후다 보니 사막을 배경으로 간단한 소품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충분히 저예산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소재라는 것이다. 마티유 투리 감독의 역시 이런 저예산을 활용한 영화였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과거는 세상이 망하기 이전이다. 마약 중독자 줄리엣과 돈 많은 미술상 잭과의 만남. 그들의 사랑의 여정이 주요한 이야기다. 잭의 희생과 헌신으로 줄리엣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임신한다..
내친 김에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를 좀 더 보기로 했다. 처음 접했던 에 대한 약간의 실망을 상쇄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해롤드 로이드에게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올레TV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3편의 해롤드 영화 중에서 1928년 작품인 를 보기로 했다. 1928년이라는 시간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1927년 가 개봉되면서 영화는 사운드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할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또한 무성영화가 그 영화문법을 거의 최고의 완성도로 보여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르나우의 같은 걸작을 생각해 보라. 역시 무성영화로서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스토리도 그렇고, 촬영, 편집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한..
해롤드 로이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다만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고층건물의 시계바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진은 아주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성룡이 자신의 영화 에서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하기도 했고 그 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 나도 이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긴장감 있게 연출되어 있기는 하더라.대신 나는 이 영화의 첫 시퀀스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해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남자가 있다는 자막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리스장면으로 침울해 보이는 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