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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일본 오타쿠들에겐 꽤 유명한 모양이다. 1973년부터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라고 하니 그 역사도 꽤 오래되었고, 또한 풍부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드라마 구성도 꽤나 치밀한가 보다. TV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되어 2005년에 극장판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만화가라면 우라사와 나오키나 이토 준지정도 알고 있고, 애니메이션쪽이라고 해봐야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야키 정도나 알고 있는 내가 데츠카 오사무의 <블랙잭>에 대해 '물론' 알리는 없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것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보는 습관 때문이었다. <블랙잭>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서 느끼는 재미나 오시이 마모루 영화에서 느껴질법한 철학적 포스는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흥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 첫 시퀀스에서의 빌딩 폭파는 그냥 9/11과 연결되어 버렸다. 분명 작가는 그것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테러리스트들이 무특정 다수를 노릴 수 있는 공간을 찾다보니 백화점이 있는 빌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빌딩 폭파는 자연스럽게 9/11과 연결되는 기호처럼 인식되어버렸지 뭔가...



그런데 영화상에서 이 사건은 빌딩의 소유주인 거대재벌 다이다로스가 세균무기를 통해 세계정복을 하기 위한 일환의 하나로 자행한 것이었다는게 밝혀진다. 여기서 나는 또 두 가지 방향의 옆길로 새게 된다. 먼저 세균무기를 보면서 일본의 731부대를 떠올리게 됐다. 세계정복은 과거 독재자들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과거부터 섬이라는 고립무원을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도발하면서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흔적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서 세균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히틀러 이후 그것은 항상 악의 축에 속한 주제가 되면서 응징의 대상으로 변모되었고, 그들의 무의식을 제어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용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주제는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평화라는 의미와 정복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교육효과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미국의 아전인수격 일방주의는 세계정복이라는 것이 옛날에 존재했었던 과거였을 뿐이다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여전히 군국주의 망령들이 틀어쥔 채 놓아주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노린 세계 패권과 아시아 패권은 순화된(?) 세계정복 논리와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을 견제할 세력으로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아마 중국은 그들보다 한 수 더 뜰 것이 분명해 보인다.


너무 딴 동네로 새어버렸다. 어쨌든... 블랙잭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앞에 적은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데츠가 마코토는 그냥 인본주의를 얘기하고 있다. 두 유형의 인물,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한다는 블랙잭과 고통없이 죽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키리코의 대립은 전형적인 대립구조이면서 윤리를 말하기 위한 가장 좋은 표본이다. 영화속에서는 키리코가 블랙잭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인권은 프레임이라는 사각의 틀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산드라 블록이 출연한 <미스 에이전트>에서 미스 미국 선발대회에 출전한 아가씨들이 외치는 '월드 피스'는 한낱 공염불의 조롱거리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현실인것 같기도 하지 뭔가? 다이다로스가 스스로 테러를 기획하고 자신의 빌딩을 폭파했다는 것은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9/11에 대한 음모론을 상기해보면서 다이다로스에 부시를 대입해보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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