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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감독이 1967년에 발표한 막차로 온 손님들은 통금을 앞두고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민(이순재)이 술에 취해 정신없이 헤롱헤롱 거리고 있는 보연(문희)을 보고 차마 거리에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어 자신이 겨우 잡은 택시에 동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곳 몰라 하는 그녀를 결국 자신의 집 소파에 재우게 되는 스토리로 시작한다. 여기에 동민의 병을 고쳐보려는 의사 친구 경석(성훈)과 부유한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재산을 노리는 주위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나이롱 정신병환자 세정(남정임). 가난하게 살다가 일본에서 얼떨결에 졸부가 되어 돌아온 친구 충현(김성옥)이 물쓰듯 돈을 쓰고 다니는 이야기가 보태지면 1967년도의 사회상이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가 가장 타락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과거는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고 미래는 아직 알 수가 없으니, 내 한 몸 고생하게 만드는 이 빌어먹을 '지금'이 가장 타락한 시대가 아니고 뭐겠는가? 유현목 감독도 전쟁의 상흔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60년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어떤 모습들에서 비인간화되고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 징후들을 포착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1967년도에 유현목 감독이 보기에 한국은 어떻게 타락하고 있었던 걸까? 그 시절 많이 거론되는 폐병을 앓고 있는 동민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또한 가장 낭만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의사인 친구 경석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인간형에서도 살짝 비껴나 있고, 화가인 충현처럼 돈으로 인해 삶의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헤메는 인간도 아니다. 경석의 직업과 충현의 돈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 안정에 대한 반항도 숨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동민은 관객들의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가장 낭만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세정과 경석의 결혼식 에피소드일 것이다. 경석에게 구애했던 세정은 돈을 쫓아 친구를 배신하고 한 결혼에서 돈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석은 돈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세정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그는 아주 전형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는 도덕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세정의 돈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나방처럼 모여 있던 사람들이 보연이 나타나자 유산이 보연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여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다. 여기에는 돈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성마저도 상실하고 마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찐하게 묻어있다.


이것의 연장선으로 3명의 친구 중 졸부가 되어 나타난 충현이 유독 아내의 사랑도 되찾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재능도 돈으로 사지 못한 채 살인자가 되고 결국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동민보다 먼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돈의 욕망에 눈이 먼 인간의 말로를 보여주는 듯 싶기도 하다. 은행을 박차고 나온 동민과 돈의 욕망에 빠지지 않으려는 경석, 아버지의 커다란 집을 버린 보연, 재산을 버리기로 한 세정이 어떻게든 결합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막차로 온 손님들에서 유현목 감독은 돈(자본)으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관계의 단면들을 보여주면서 그 회복의 실마리를 제시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민과 경석이 충현의 자살을 알면서도 방조한 듯한 모습을 살짝 삽입하는 감독의 의도는 물음표를 붙여 두고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개봉 : 1967년 12월 14일 명보극장

감독 : 유현목

출연 : 이순재, 문희, 남정임, 김성옥, 성훈, 안인숙, 정민, 성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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