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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감독의 <살인자>는 평이 안 좋아서 망작인가 보구나 했는데, 아니더라. 일단 생각보다는 괜찮다는 것. 뭔가 깔끔하게 진행시킨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지만, 살부라는 테마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문제와 청소년 문제를 무리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마무리가 좀 깔끔하다는 느낌이 없어서 아쉽지만 말이다.
먼저 이 영화에서 살인자는 바로 아버지다.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직접적인 살인자로서의 아버지가 있지만, 지수 아버지 캐릭터에서 보듯 간접적인 살인자도 있고, 영호를 괴롭히는 일진의 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라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키워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협(마동석)을 보자. 첫 장면에서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인정사정 없이 칼로 난자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지수의 과거와 연계되는 연쇄살인마로서의 주협이다. 하지만 주협이 처음부터 연쇄살인마였다가 아내를 죽인 건지, 아니면 아내를 죽인 후 죄책감으로 인한 정신분열증 때문에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디제시스 내에서 그가 살인자라는 것은 지수의 회상을 통해서만 제시되고, 어떤 현실과 연관되는 부분들- 경찰의 추적이라든지-같은 것은 없다. 그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전형처럼 제시된다. 그의 목적은 아들 용호를 잘 키우는 것. 왕따인 아들이 맞고 와도 찍소리 하지 말고 지내라고 말한다. 즉, 그는 이제 평화를 원하는 것일 테다. 그의 살인 본능을 일깨우는 과거는 망각속으로 사라졌고, 대신 아들에 대한 부양의 의무가 그의 본능을 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살인본능이 깨어났음을 알려주는 전주는 개의 잔혹한 죽음이다.
이 영화는 또한 아들 용호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깊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을 꿈꾸며 가족의 회복을 꿈꾼다. 비록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용호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 때문에 자신의 피를 씻기 위해 뱀파이어처럼 되기도 한다. 즉, 하얀 눈을 그리고 깨끗한 피를 마시듯 그는 아버지의 더러운 피를 씻으려고 한다. 즉, 아버지와 자신을 구분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아버지를 죽이는 살부로 나타난다. 그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후반부는 지나치게 호러영화 컨셉으로 간다. 주협의 정신분열을 강조하면서 그의 연쇄살인마로서의 의미를 애써 지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는 좀 느슨해지고 만다. 주협과 아들 용호의 대결로 클라이맥스를 좀 더 채웠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정신분열증이라는 소재를 없앴다면 좀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결국 부모를 거부하는 지수와 용호는 행복할 것인가? 혹시 지수와 용호의 미래가 영화 초반부에 나왔던 장면이라고 말하지 못할 법도 없다. 부모의 관심이 부재한 세상에서 아이들의 생존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개봉 : 2014년 1월 15일
감독 : 이기욱
출연 : 마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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