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영화다 아니다라는 공방속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래서 그 기상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간판을 내려야 했던 영화 을 드디어 보았다.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였다는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다 보니 민감한 민족주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수식어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을 만든 윤종찬 감독의 2번째 프로젝트라는 것에 더 흥미가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 생각에 윤종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거의 박찬욱과 맞먹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억이 들었다는 이 대작은 극장에서 겨우 1주일만에 막을 내렸고, 팬을 ..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를 재밌게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두번째는 영화가 끝날 때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였다고 깨닫는 것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따위의 스토리를 좀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때는 신파적인 요소가 섞여들어가면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기도 했다. 정윤희가 나오는 뻔한 스토리 '사랑하는 사람아'는 눈물, 콧물 짜내며 봤던 기억도 난다. 물론 이젠 능글맞아져서 세련된 신파여야만 마음을 움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뻔하니, 안뻔하니 해도 멜로드라마는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 거 같다. '가을로'는 치유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용서와 받아들임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애인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자책하는 현우는 죽은 애인이 남..
박인제 감독의 은 정부 위의 정부라 할수 있는 끝없는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 그들이 어떤 결정적 순간에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고 여론을 조작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다는 음모론을 중심에 놓고 있다. 영화가 1994년에 발암교라는 다리에서 의문의 폭파가 일어나 끊어진다는 설정에서부터 다분히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리게 하고, 그 외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설정을 통해 최근의 사건을 연상하게 하면서, 시의적절한 흥미를 유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윤혁(진구)이 나타나고, 이방우(황정민)기자가 사건에 개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흥미로운 소재에 비해 인물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영화에 임팩트를 터트릴 만한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 같은 느낌이다. ..
안상훈 감독의 를 보고 나면 ‘정말’ 무난한 영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딱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대로 따라간 영화라는 생각. 그러다보니 인물의 성격화나 내러티브 구조등이 한치의 어긋남없이 예상가능한 범위내에서만 진행된다. 그런데 재미있다. 진부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스릴러 영화에서가장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딱 그만큼의 재미는 보장하는 느낌. 새로운 것을 봤다는 흥분은 없지만 익숙한 풍경속에서 편한 느낌.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재능도 없이 새로움만 추구하다 낭패 보느니 적당한 예산에서 흥행을 예상하고 딱 그만큼 조심스럽게 만들면 예술적 성취는 없더라도 대중오락영화로서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해낸다는 생각. 든다. 사고로 실명한 주인공 수아(김하늘)가 있다...
감독 김지훈보다 제작자 윤제균의 이름이 더 많이 부각된 올 여름 한국영화 최고의 블로버스터가 될 뻔했던 . 어쨌거나 감독이든 제작자든 얼굴에 똥칠한 것은 분명한 듯 하다. 그들의 목적. 과연 무엇일까? 재미로 꽉 채운 일류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놓고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함과 동시에 돈도 벌어보겠다는 야심? 그 야심 한번 크구나. 그렇다면 최고 품질의 제품을 내놓아야 할터. 그러나 윤제균 제작, 김지훈 감독의 는 큰 야심에 맞는 큰 야망을 품는 대신 꼼수를 품어버리고 말았다. 불량식품으로 관객의 혀를 녹아내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 꼼수. 그러므로 는 일류를 꿈꾸며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삼류를 목표로 일류의 흥행기록을 꿈꾼, 그야말로 꿈(?)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는 무엇보다도 선배 괴수영화나..
어쨌거나 항상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는 김태희가 그럭저럭 좋은 연기를 보였다는 기사를 얼핏 읽어본 것 같기도 하나 이 영화에서 김태희라는 배우는 노력에 비해 여전히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나 오랜만에 출연한 연기력 좀 있다는 양동근도 존재감 제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경주마들이 돋보이느냐 그것도 아니더라.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바로 감독 양윤호다. 단역으로 2~3초 출연했기 때문에?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이렇게 엉성하게 보일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는 그 연출력 때문이다. 그렇다. 양윤호 감독의 그랑프리는 있을 건 다 있으나 제대로 된 것은 없는 그런 영화였다. 익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
박수영 감독의 는 돈 안들인 티가 난다. 저예산 독립영화다. 시각적으로 풍만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 여백을 채워야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든지, 깊은 사회비판의식이라든지, 아니면 장르적으로 밀고 들어가기나 패러디 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박수영 감독은 일단 세 번째 방법을 택한 것 같다. 그래서 호러에 코믹을 버무려서 재미를 추구하면서 메시지를 살짝 도출하는 방식. 전형적이라고 할만도 하지만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꽤 매력적인 접근방식일 수 있다. 는 회사에서 해고된 노동자 김씨(이경영)가 엄사장 가족의 휴가지에서 그들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는 잔혹한 장면이 이어지는데, 사건의 범인인 김씨는 “네가 짤라서 나도 짤랐다”고 말하는데..
윤재근 감독의 는 하나의 심장을 두고 쫓고 쫓기는 스릴러 장르를 통해 재미를 만들어가는 영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모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는 두 명의 어머니가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것이다. 심장병으로 죽음을 문턱에 둔 딸을 가진 영어 유치원 원장 연희(김윤진). 삼십이 넘도록 양아치짓을 하고 다니는 아들 휘도 때문에 속을 썩는 가난한 어머니. 표면적으로 연희와 휘도(박해일)의 대결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휘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뇌사에 빠진 어머니이므로, 이 영화는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일단 윤재근 감독은 영화 속에서 악인을 내세우지 않는다. 휘도의 어머니를 착취했던 남자(주진모)정도가 악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어리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