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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를 재밌게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두번째는 영화가 끝날 때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였다고 깨닫는 것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따위의 스토리를 좀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때는 신파적인 요소가 섞여들어가면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기도 했다. 정윤희가 나오는 뻔한 스토리 '사랑하는 사람아'는 눈물, 콧물 짜내며 봤던 기억도 난다. 물론 이젠 능글맞아져서 세련된 신파여야만 마음을 움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뻔하니, 안뻔하니 해도 멜로드라마는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 거 같다.


'가을로'는 치유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용서와 받아들임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애인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자책하는 현우는 죽은 애인이 남긴 다이어리를 보며 여행을 시작한다. 백화점 붕괴로 죽은 현우의 애인 민주의 부모님은 현우에게 나침반을 선물하며, 바늘끝이 서로 만나지 못해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며 현우에게 스스로를 놓아주기를 당부한다.


영화는 또한 현실에서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여자 민주가 안내하는 화해의 여행이기도 하다. 영화속에서 민주는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당연히 회상의 공간에만 등장하며, 과거속의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또한 그 이미지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결국 가을로는 죽은자가 안내하는 여행이며, 또한 중매이기도 하다. 현우는 여행후에 자신을 구속에서 놓아버릴 수 있었다. 또한 붕괴현장에서 구조된 세진 역시 민주가 안내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구속으로부터 놓아준다. 그리고 영화는 현우와 세진의 결합을 암시하며, 희망을 품은 채 끝난다.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가을로'는 그저 너와 내가 밀고 당기는 사랑이야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김대승 감독은 멜로 라인 밑에 삼풍백화점 붕괴와 부동산 비리라는 묵직한 한국의 현실을 가져다 붙임으로써 사회성을 함께 이야기한다. 개발독재니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급속한 도시화니 모두 한국적 상황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결국 그렇게 번지르르한 외형은 기형적으로 발전한 한국경제의 놀라운 발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항상 붕괴의 불안함을 감추어야만 했다. 도시라는 공간속에서 가장 도시적이랄 수 있는 변호사와 방송국 PD라는 직업을 가진 두 여피(현우, 민주)는 그 공간속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이는 본인들의 자의에 의한 헤어짐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가장 도시적 이미지의 아파트를 구입해 프로포즈 했던 현우는 결국 그 아파트에 함께 정착하지 못한다. 근대적 이미지인 아파트 역시 붕괴의 위험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관계의 형성은 불가능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감독은 근대가 만들어낸 콘크리트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전근대적인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우와 세진은 7번 국도를 따라가며 곧 사라질 어촌의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는 민주가 곧 사라질 한국의 사막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자연속에서 관계는 늘 화기애애하게 그려진다. 현우와 세진이 자연을 경유해 도시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관계는 이제 안정적으로 시작되리라고 암시된다. 안타깝게도 현우와 민주는 자연속에서 같이 있은 적이 없었다. 항상 민주는 현우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연을 사진이라는 이미지로만 남겨놓았다. 그들은 자연을 경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합에 실패한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 민주가 안내한 한바탕 살풀이는 완성되었고, 민주가 화면을 향해 사진 셔터를 누를 때 프레임 밖에서 프레임 인하는 현우와 세진을 볼 수 있다. 민주는 그들의 사진을 찍고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말이다.


개봉 : 2006년 10월 26일 

감독 : 김대승

출연 :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 최종원, 박철민, 박승태,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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