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현 감독의 1970년 개봉작 을 보고 난 후, 혹시 이런 영화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감상했던 몇 편의 최인현 감독의 영화는 그저 평범한 한국영화였을 뿐이었다. 물론 이 영화도 대단한 걸작이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당시의 평범한 한국영화의 수준을 보여 주거나, 조금 더 잘 만든 영화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젊은이들의 처지(?)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황에 공감되는 바가 컸다. 이 영화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하루 데이트마저 쉽게 하지 못하는 가난한 연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속엔 한국이라는 사회가 고스란히 축소되어 있었다. 가난한 연인..
1968년 의 메가히트는 정소영 감독을 한국 멜로드라마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으로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신파적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를 적당한 선에서 절제하는 편이라서 깔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은 1970년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인데, 이 시기 정소영 감독은 이후 4편까지 만들어진 연작을 계속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참신함을 상실하며 매너리즘에 빠지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만든 은 깔끔한 멜로드라마로 만들어진 것 같다. 마치 후편들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은 어느 정도 정성을 많이 쏟은 느낌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전형적인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악역을 배제함으로써,..
80년대에 들어와서도 악명높은 검열은 여전했다. 왜 아니겠는가? 떳떳하지 못한 전두환 정권시절이니 누가 뒷담화라도 할까봐 날이 서있던 시절인데... 그 시절에 이장호 감독은 20여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의 속편 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제목이 사회를 어둡게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반려.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쳐도 계속 반려. 보다 못해 화가 난 이장호 감독이 아무거나 골라달라며 제목을 여러개 가지고 갔는데 그때 검열관이 골라준 제목이 바로 바보선언이었고, 그렇게 이라는 실험적인 영화는 태어났다. 그러므로 에는 한국땅에서 영화를 한다는 감독의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밝은 앞날을 고민하고 싶은 열망은, 전두환 세상이 곧 천국인데 뭔 비판이냐며 악착같이 입에 칼 물..
정인엽 감독의 그 유명한 을 보고 난 이후의 느낌은 이랬다. 이렇게 덜떨어진 영화가 그토록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더군다나 온갖 현상을 만들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내심 당혹스러웠다는 것. 이 영화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은 그냥 졸작이다. 사실 모든 걸작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졸작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므로 흥행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 영화가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을 적당히 패러디한 제목이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여타 영화보다도 야하지 못한 이 영화가 그토록 야한 영화라는 소문을 달고 다니는 것은 아마 이 영화가 당대 관객의 은밀..
는 제목은 참 좋은데... 영화는 진부한 통속멜로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자친구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댄 여자 혜실(장미희). 그런 여자를 버리고 떠난 남자 형구(신영일). 결국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지만 지금은 과부. 7년만에 돌아온 남자는 재벌집딸 세화(조옥희)와 연애중. 그러다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여자와 남자. 다시 시작된 연애. 하지만 곧 남자는 암선고를 받고 곧바로 시한부로 돌입. 여자의 지극정성 간호가 시작된다. 그러다 결국... 이미 너무 익숙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김기 감독은 영화의 호흡마저 느리게 끌로 가고 있어 끝까지 보려면 약간의 인내가 요구될 정도다. 단, 진부한 스토리라인에서 그나마 눈길을 끄는 것은 시동생(이영하)의 형수 혜실에 대한 감정의 동요를 그리고..
이원세 감독의 는 한 엑스트라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밝혀내는 추리적 스타일의 영화다. 기대보다 영화가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도 사회비판적인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어 만족스럽지만, 섬세한 연출의 부족은 많이 아쉬운 점이었다. 이원세 감독의 능력이라면 좀 더 세부묘사에 완성도를 기울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 한국영화의 한계라고 해야 할지, 제작상의 이유라고 해야 할지 어떻든 기술적 마무리의 부족이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시체로 발견된 강유진(신영일)의 과거를 추적하는 형사(박근형)의 회고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가 왜 한국인 강유진에서 재일교포 히라오카 유지로가 되어야 했는지, 왜 영화속에서 주인공을 대신하여 죽는 엑스트라에서 사기꾼이 되어야 했는지를 역..
나는 비트를 만화 비트가 아닌 영화 비트로만 생각한다. 원작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또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므로 얼마나 감독이 자신의 주제를 잘 표현해 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김성수 감독은 자신의 두번째 작품으로 첫작품인 '런어웨이'의 실패를 만회하기로 단단히 작정을 한 것 처럼 보인다. 그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우선 현란한 영상으로 중무장한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편집이다. 스피디한 커트는 살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는 등장인물들의 절박한 심리를 무엇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무시한 교차편집은 민의 혼란한 심리상태를 무엇보다 잘 대변하고 있다. 물론 촬영 역시 두말할..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여전한 그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항상 그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관계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인공들은 항상 서로를 욕망하지만 편안한 현실에의 안주라는 유혹에 굴복하고 제대로 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어찌보면 현실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안주를 선택한 인물들은 어찌나 졸렬하고 비열한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저런 인간이 아니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지만 에서는 자신의 관점이 인물의 관계에 앞서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제목에서부터 여자가 왜 남자의 미래인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