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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근 감독의 <심장이 뛴다>는 하나의 심장을 두고 쫓고 쫓기는 스릴러 장르를 통해 재미를 만들어가는 영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모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는 두 명의 어머니가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것이다. 심장병으로 죽음을 문턱에 둔 딸을 가진 영어 유치원 원장 연희(김윤진). 삼십이 넘도록 양아치짓을 하고 다니는 아들 휘도 때문에 속을 썩는 가난한 어머니. 표면적으로 연희와 휘도(박해일)의 대결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휘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뇌사에 빠진 어머니이므로, 이 영화는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일단 윤재근 감독은 영화 속에서 악인을 내세우지 않는다. 휘도의 어머니를 착취했던 남자(주진모)정도가 악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어리버리한 인물로 설정하므로써,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다루는데 더 중점을 둔다. 즉, 누가 착한놈인지, 나쁜놈인지 편가르기를 한 후 어느 한쪽 편에 감정이입을 하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가장 악랄하게 타락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까지 몰리지만 결국엔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물론 이와 대비되는 설정으로 등장하는 것이 나와 나의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잔인할 수도 있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에서도 주저함이 없지만 말이다.
심장이 절박하게 필요한 연희나 갑자기 어머니를 죽음으로부터 지키겠다는 휘도. 서로 심장을 두고 질주하는 두사람의 갈등은 결국 또 한명의 어머니인 휘도의 어머니의 희생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결국 연희가 성공적으로 심장을 구해서 아이를 살려낼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인 것이다. 얼마나 깊이 극에 몰입하도록 할 것인가? 이 점에서 윤재근 감독은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스릴러를 구성한다. 명확한 기승전결구도를 통한 적절한 스피드감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임팩트가 없다. 영화가 끝난 뒤 여운을 남길만한 드라마나 액션 혹은 이미지가 부재하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인물들의 스토리는 나름 흡인력이 있었지만 도시 스릴러라 할만큼 도시 자체를 중요한 공간으로 설정한 이 영화는 공간을 통해 속도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더불어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이라면 윤재근 감독이 결말의 부담에 자폭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연희와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낸 혜은의 일상적 대화에서 끝냈다면, 좀 더 부조리한 인간사회를 드러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재근 감독은 기어코 감동이라는 코드를 포기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심장을 기증하기로 한 휘도와 연희를 한 공간에 모아놓고 한국적 정이라는 따스함을 보여주려는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다. 물론 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영화가 이런 군더더기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것에 비해 <심장이 뛴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은 아닌가 싶다. 억지로 쥐어짠 감동이 쉽게 마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개봉 : 2011년 1월 5일
감독 : 윤재근
출연 : 김윤진, 박해일, 주진모, 김상호, 강신일,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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