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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현 감독의 1970년 개봉작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을 보고 난 후, 혹시 이런 영화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감상했던 몇 편의 최인현 감독의 영화는 그저 평범한 한국영화였을 뿐이었다. 물론 이 영화도 대단한 걸작이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당시의 평범한 한국영화의 수준을 보여 주거나, 조금 더 잘 만든 영화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젊은이들의 처지(?)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황에 공감되는 바가 컸다. 이 영화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하루 데이트마저 쉽게 하지 못하는 가난한 연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속엔 한국이라는 사회가 고스란히 축소되어 있었다.

 

가난한 연인들 이라는 소재는 동서고금 어디에라도 있다. 그렇다 보니 우선 몇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먼저 떠올랐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어느 멋진 일요일>도 덩달아 떠오른다. 그래도 한국적 현실에서 이만희와 최인현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이만희가 끝없는 암울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최인현 감독은 희망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철(남성훈)과 소희(윤정희)는 사내커플이다. 그들은 성공을 꿈꾸지만 현실은 지독한 가난 뿐이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일요일 멋진 데이트를 계획한다. 그러나 철은 총무과장의 일직을 대신 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소희는 총무과장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릴없이 거리를 헤메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약속했던 시간은 자꾸 자꾸 늦어지고, 결국 해는 기울어 밤이 된다. 길에서 우연히 총무과장을 만난 소희. 그런데 교대를 해야 할 총무과장은 한가로이 낚시를 가서 놀고 왔다고 말한다. 억울한 심정에 소희는 당장 집어치우고 달려오라고 전화를 해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철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끝까지 기다리라고만 한다.

 

철이 보여주는 행동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직장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불합리한 상황도 눈 질끈 감고 참아가며 승진만을 바라보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에 박봉에 대해 한숨을 쉬는 두 연인을 통해 일한 만큼 돈도 벌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직장의 계급이 주는 불합리함을 통해 한국사회와 기성세대의 속물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은 외부로 눈을 돌려 그 불합리함을 지적하기 보다는 우선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길 원한다. 즉, 이 영화의 중심 내용이라 할 철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처세의 원인을 젊은이의 패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국이라는 사회의 구조에서 찾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무엇보다도 본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감독은 철을 지극히 평범한 또래의 젊은이라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구축하고 소희의 좌절감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으로 현실을 환기시키면서 한국사회를 비판하고 패기를 잃은 젊은이를 통해 적절하게 한국이라는 사회의 폐부를 읽어내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최인현 감독이 조금만 절제를 했더라면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은 정말 멋진 영화가 되었을텐데, 그건 조금 아쉽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건달(이대엽)의 등장은 대표적으로 과잉의 이미지다. 물론 이 시절의 영화가 관객들을 위해 너무 친절한 설명을 하고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미지로 이해되는 상황에서 지나친 설명은 오히려 영화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건달의 일장연설이 없어도 충분히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후 서로 뉘우친 철과 소희는 월요일 아침 씩씩하게 출근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문을 닫는다. 과연 철은 불합리함에 저항할 수 있는 패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쨌거나 이 정도의 성과를 이룬 영화가 마지막 한방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감독을 탓해야 하나? 시나리오 작가를 탓해야 하나? 아니면 관객을 탓해야 하나? 좋은 만큼 안타까움도 드는 영화였다. 


개봉 : 1970년 5월 14일 국도극장

감독 : 최인현

출연 : 윤정희, 남성훈, 이대엽, 허장강, 박암, 김희준, 추석양, 김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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