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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트를 만화 비트가 아닌 영화 비트로만 생각한다. 원작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또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므로 얼마나 감독이 자신의 주제를 잘 표현해 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김성수 감독은 자신의 두번째 작품으로 첫작품인 '런어웨이'의 실패를 만회하기로 단단히 작정을 한 것 처럼 보인다. 그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우선 현란한 영상으로 중무장한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편집이다. 스피디한 커트는 살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는 등장인물들의 절박한 심리를 무엇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무시한 교차편집은 민의 혼란한 심리상태를 무엇보다 잘 대변하고 있다. 물론 촬영 역시 두말할 필요없이 좋았다.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왕가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기법의 사용 역시 높은 효과를 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김성수 감독이 너무 고민 없이 그 기법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새로움을 위해 당시 유행하고 있던 기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화기법이 무슨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또한 세계영화사적으로 봐도 영향 주고 영향 받기는 이미 당연한 일인 것이다. 몽따쥬 하면 소련의 에이젠쉬타인을 떠올리지만 그 역시 그리피스로부터, 또한 한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기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창조 했느냐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김성수 감독의 비트에는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일조를 하고 있기는 하나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그 화면은 김성수적이 아닌 왕가위적이라는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꿈이 없었다는 자조적인 대사로 시작하는 비트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청소년들의 삶을 바라본다. 여기서 주변부로 밀려난 청소년이란 민, 태수, 환규등의 일반적인 문제아 집단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로미나 그녀의 친구들로 대변되는 주류 청소년 모두를 아우른다. 그들은 똑같이 사회라는 곳에 속해있지 않으며 그곳에 속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청소년이라는 존재는 가장 두드러진 중간자적 존재들이다. 어른도 아니며 아이도 아니고 또한 사회인도 아니며 부모에게 속해 있지도 않다. 중간자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꿈꾸는 일 뿐이다. 그리고 그 꿈이라고 하는 것은 부조리한 사회에 제대로 안착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태수와 환규의 꿈과 서울대로 대표되는 로미와 그녀의 친구들의 꿈은 동일하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로 부터 강요당한 꿈을 스스로의 선택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도시의 계급은 1등급과 7등급의 계급으로 대체된다. 그래서 민은 노예가 된다. 그러나 1등급인 로미는 7등급인 민에게 의지한다. 강요당한 꿈을 꾸던 로미는 삐삐를 통해 탈출을 꿈꾼다. 삐삐소리는 로미의 SOS인 것이다. 민은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타자화시키면서 우뚝 선다. 로미는 과연 제대로 도시/사회의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서 놀이터의 정글짐에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민의 죽음 이후 울리는 삐삐는 탈출구를 잃어버린 로미의 애절한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로미의 삐삐는 이제 공허한 울림만 남길 뿐 민에게로 가지 못한다. 강요받은 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그녀는 민을 가질수 있었지만 그를 소유할 수는 없게된다.

 

그래서 민의 나에겐 꿈이 없었다라는 대사는 부조리한 사회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꿈을 말한 것이다. 그의 꿈은 도시로 상징되는 이 사회에 있지 않았다. 소실점으로 대변되는 그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토바이 질주는 꿈을 향한 달음박질인 것이다. 오토바이는 민과 동일시된다. 그런 의미에서 로미는 그에게 "너와 오토바이의 성능을 혼동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퀴 두개인 오토바이는 바퀴 네개로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의 표현이며, 민을 지켜주는 구심점이 된다. 민이 오토바이를 잃어버렸을때 민은 자신이 거부하던 갱조직(사회)에 어쩔수 없이 발을 내디딘다.

 

영화는 여전히 나에겐 꿈이 없었다는 민의 대사로 문을 닫는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없는 것 들이다. 태수와 환규. 로미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민이 그토록 원했던 순수한 꿈을 과연 도시는 줄 수 있을 것인지 카메라는 도시를 비추며 묻는다.

도시속에서 여전히 살아가야 할 로미는 과연 민의 꿈을 찾아줄 수 있을까?


개봉 : 1997년 5월 3일 

감독 : 김성수

출연 : 정우성, 고소영, 유오성, 임창정, 사현진, 장동직, 이인옥, 진봉진, 이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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