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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들어와서도 악명높은 검열은 여전했다. 왜 아니겠는가? 떳떳하지 못한 전두환 정권시절이니 누가 뒷담화라도 할까봐 날이 서있던 시절인데... 그 시절에 이장호 감독은 20여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어둠의 자식들>의 속편 <어둠의 자식들 2>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제목이 사회를 어둡게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반려.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쳐도 계속 반려. 보다 못해 화가 난 이장호 감독이 아무거나 골라달라며 제목을 여러개 가지고 갔는데 그때 검열관이 골라준 제목이 바로 바보선언이었고, 그렇게 <바보선언>이라는 실험적인 영화는 태어났다.

 

그러므로 <바보선언>에는 한국땅에서 영화를 한다는 감독의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밝은 앞날을 고민하고 싶은 열망은, 전두환 세상이 곧 천국인데 뭔 비판이냐며 악착같이 입에 칼 물고 달려들어 찍어 누르려는 거머리떼들의 세상에선 절망으로 돌변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전쟁은 이장호 감독의 멋진 승리로 끝난다. 어렵게 개봉된 <바보선언>은 보란 듯이 흥행에 성공하고 한국영화사의 걸작중의 하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바보선언>은 투신자살하는 감독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옷과 신발, 시계는 부랑아인 동철이 입게 된다. 그리고 동철은 가짜 여대생, 창녀, 천민자본가들 등 한국사회의 모순의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며 모순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타일적인 면에서고 기존의 서사구조와 스타일을 뒤집으며 스스로 미국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영화스타일의 전복도 꾀하는 실험을 감행한다. 이런 스타일실험은 어떻게 보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않았을까? 검열관들은 그저 말도 안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본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무식에 감사를...^^

 

동철(김명곤)과 육덕(이희성) 그리고 창녀(이보희)가 제대로 살아낼 수 없는 한국사회는 그만큼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죽음으로 항거했던 감독의 예술혼은 동철이 걸어다니는 한국사회를 통해 로드무비가 되고, 사회 모순을 파헤치는 고발이 되어 살아났다. 그러나 절름발이, 뚱보, 창녀등 기형적인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 혹은 약자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들에겐 절망만 남는다. 동칠과 육덕과 창녀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백일몽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희망을 꿈꿀수 있는 사회는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절망한 동철은 영화 감독이 자살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투신한다. 하지만 육덕은 그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고통받는 민초들의 연대가 주는  희망마저 빼앗을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개봉 : 1984년 3월 1일 단성사

감독 : 이장호

출연 : 이보희, 김명곤, 이희성, 김지영, 남포동, 유영국, 이장호, 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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