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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여전한 그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항상 그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관계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인공들은 항상 서로를 욕망하지만 편안한 현실에의 안주라는 유혹에 굴복하고 제대로 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어찌보면 현실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안주를 선택한 인물들은 어찌나 졸렬하고 비열한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저런 인간이 아니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는 자신의 관점이 인물의 관계에 앞서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제목에서부터 여자가 왜 남자의 미래인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겠지만 그 스스로 인물에게 애정을 쏟는 방식인 듯도 싶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서로 친하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해주지만 순간순간 불현 듯 끼어드는 감정의 고조-화냄은 그 관계라는 것이 억지로 쌓아올린 바벨탑마냥 위태위태한 것임을 고백하는 장치이다. 영화가 문호와 헌준의 이틀 동안의 간단한 행적을 통해 그들이, 나아가 남자라는 인간의 속성이 얼마나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나르시스트들 인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감독은 여전히 인물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문호와 헌준은 지금의 문호와 헌준과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사람이 변했다던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양 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기적이다. 영화는 똑같은 사건을 약간 다르게 변형해서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선화가 있는데 과거의 애인이었던 헌준은 강간당했다는 선화의 말에 그녀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갔고, 현재 문호와 오럴섹스를 했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내며 다시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라 그 행위를 바라보는 관점 혹은 사고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독은 따지고 든다. 그래서 선화의 대사 “너무 쉬운거 아냐?”는 “잘 사는게 뭔데”와 겹쳐지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감독은 문호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쏘는데, 이는 그가 단순한 헌준보다 더 비열한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후반부는 문호에게 상당수 할당하며 그의 졸렬함을 전시한다. 감독은 우선 그가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선생이 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을 보여준 후 현실에서 바로 뭉개버리고 또한 직접적으로 저질이라는 대사를 그에게 부여하고 문호가 그 말을 과장된 몸짓으로 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워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쉬지도 않고 제자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제자에게 들키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종결된다. 이것은 또한 과거의 다른 모습인데 헌준에게 실연당한 선화에게 섹스를 요구한다든지, 현재 헌준이 있는 곳에서 섹스를 요구하는 모습은 사람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한 셈이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에 대한 절망이다.

 

여기서부터 감독은 관계가 아니라 관점을 변화시켜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남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문호와 헌준은 요구하지만 행위에 대한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관계는 ‘서로’가 아닌 ‘나’에 묶여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자는 거부하거나 스스로 설 수 있다. 성희롱에 가까운 문호와 헌준의 요구에 중국집 여종업원은 거절하고, 그녀가 주인과 중국어로 나누는 대화는 아마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리라. 문호의 여제자는 스스로의 선택이었던 행위에 대한 담담한 모습으로 문호와 너무 비교된다. 마지막으로 선화는 과거의 선화가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이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했다. 현재에서 그녀의 섹스는 수동적이라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처리된다. 어쨌거나 여성인물들의 행위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적어도 비열하지 않다는데서 감독은 희망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고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게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가 희망을 읽어내려는 변화의 조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개봉 : 2004년 5월 5일

감독 : 홍상수

출연 : 유지태, 김태우, 성현아,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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