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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엽 감독의 그 유명한 <애마부인>을 보고 난 이후의 느낌은 이랬다. 이렇게 덜떨어진 영화가 그토록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더군다나 온갖 현상을 만들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내심 당혹스러웠다는 것. 이 영화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애마부인>은 그냥 졸작이다. 사실 모든 걸작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졸작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므로 흥행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 영화가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엠마뉴엘 부인>을 적당히 패러디한 제목이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여타 영화보다도 야하지 못한 이 영화가 그토록 야한 영화라는 소문을 달고 다니는 것은 아마 이 영화가 당대 관객의 은밀한 상상력을 정확히 자극했던 모양이다.
내용적으로도 <애마부인>은 재난이다. 조선시대를 그대로 80년대로 옮겨온 듯 애마(안소영)를 둘러싼 인물들은 전근대적 가치관을 그녀에게 요구한다. 더군다나 비슷한 유형의 스토리텔링을 가진 81년 이전의 영화들 중 가장 저급한 방식만을 가져온 듯 연출이 형편없다. 그나마 그럴듯한 촬영마저 없없다면 완전 오 마이 갓이다. 애마 주위의 3명의 남자(남편(임동진), 옛애인(하명중),도예가(하재영))들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떤가? 애마가 다시 옛 남편에게 돌아간 것에 대해 은근슬쩍 조롱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면서 마치 고급스럽게 사회비판을 하는 듯 연출하고 있지만 결국은 여성을 바보로 만들면서 끝까지 착취하겠다는 정인엽 감독의 위선을 보는 듯 했다. 어쩌면 감독은 애마의 숨통을 틔워줄 생각이 없을 것만 같다.
어쨌거나 이토록 저급한 영화가 그만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면 이는 당시 한국사회와 사람들이 어떠했는가하고 심리적으로 파고들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SEX라는 부분을 사회적으로 풀어 보지 않는다면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애마부인>보다 더 야하고 노출이 심한 영화는 이미 70년대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애마부인>이 이전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애마의 자위에 가까운 성적 판타지가 화면에 구현되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금지되어 있던 포르노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마치 실비아 크리스텔의 정말 야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엠마뉴엘 부인>을 보고 있다는 환상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애마부인>의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은 어쩌면 그 시대가 성적으로 얼마나 억압적이었을까를 오히려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좀 더 해보긴 했지만 정리가 쉽지 않아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애마는 말을 사랑하는 부인(愛馬)이 아니고 삼베를 사랑하는 부인(愛麻)이 아닌가 말이다. 죽부인에 더 가까울 듯. 물론 이는 억압적이었던 검열이 만들어낸 코미디이긴 하지만 말이다.
개봉 : 1982년 2월 6일 서울극장
감독 : 정인엽
출연 : 안소영, 하재영, 임동진, 하명중, 김진규, 전숙, 김애경, 문태선, 문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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