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원세 감독의 <매일 죽는 남자>는 한 엑스트라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밝혀내는 추리적 스타일의 영화다. 기대보다 영화가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도 사회비판적인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어 만족스럽지만, 섬세한 연출의 부족은 많이 아쉬운 점이었다. 이원세 감독의 능력이라면 좀 더 세부묘사에 완성도를 기울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 한국영화의 한계라고 해야 할지, 제작상의 이유라고 해야 할지 어떻든 기술적 마무리의 부족이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시체로 발견된 강유진(신영일)의 과거를 추적하는 형사(박근형)의 회고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가 왜 한국인 강유진에서 재일교포 히라오카 유지로가 되어야 했는지, 왜 영화속에서 주인공을 대신하여 죽는 엑스트라에서 사기꾼이 되어야 했는지를 역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은 살인에서 자살로 결론내려지며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자살이 분명 사회적 타살임을 구구절절한 대사로 설명하는 걸 잊지는 않는다.

 

영화속에서 유진이 만나는 인물들은 모두 돈에 집착하고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영화에서 옷 벗는건 문제될게 없다는 여자친구 윤희(유지인)을 비롯, 그가 재일교포 유지로상이 되어 만나는 유한부인들의 모습.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친구들의 모습까지. 하지만 유진은 고창원 박사(박암)을 통해 적어도 돈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함은 남아있다고 믿지만 결국 그 고박사 마저 돈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원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현대 사회의 계급은 돈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며 철저하게 배금사상에 물든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다.

 

디제시스 적으로 유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고창원 박사의 비겁한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배금주의에 물든 사회 그 자체가 유진의 직접적인 살인자다. 이미 시궁창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방울의 얼룩은 무늬일 뿐이지만, 깨끗함에는 한방울의 얼룩도 치명적인 전체가 될 수 있다. 그런점에서 유진이 고박사의 부정에 그토록 분개한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진은 너무 순진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영화주인공의 순진성이야말로 관객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니 그것도 가치있는 일이긴 하다. 

 

이제 눈을 크게 떠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제가 좋은 만큼 이 영화의 섬세하지 못한 마무리는 옥의 티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완성도를 갉아먹는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좋은 스토리와 주제 외에도 스타일에 좀 더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것.

더불어 시궁창에 있는 것들의 얼룩에도 눈을 크게 떠야 할 것이다. 맑은 곳의 얼룩은 금방 눈에 띄어 손쉬운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시궁창에 있는 것들의 얼룩에는 둔감하다. 그러니 더 눈을 크게 떠야 겠다는 것. 뜬금없지만 이 영화를 본 후 든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시궁창의 얼룩엔 너무 둔감하니까...


개봉 : 1981년 2월 14일 스카라극장

감독 : 이원세

출연 : 신영일, 유지인, 박근형, 김추련, 방희, 도금봉, 허진, 박원숙, 김애경, 박암, 전숙, 최성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