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라하는 배우 문숙. 이만희 감독이 죽은 후 한국을 떠났던 문숙. 은 문숙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의미가 있다. 문숙이 활짝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영화다. 언젠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문숙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40년의 세월을 건너 뛴 모습이지만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바로 앞에 있어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지 뭔가. 싸인이라도 받아보는 건데 하며 나의 소심함을 탓했더랬다. 문숙의 마지막 영화인 박남수 감독의 은 70년대 젊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때 젊은이들은 참 많이도 뛰어다닌다. 혼자 뛰고, 손을 잡고 뛰고, 가방을 빙빙 돌리면서 뛴다. 마치 뛰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의 주인공 난영과 진호도 열심히 뛰..
정소영 감독의 는 결혼으로 은퇴했던 60년대 트로이카중의 한명이었던 남정임이 이혼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다. 으로 한국 영화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면서 멜로영화에서 만큼은 중요한 파워를 가진 정소영 감독이라면 남정임으로서도 몇 년의 공백과 이혼이라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복귀가 되리라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큰 시너지 효과를 내진 못한 것 같다. 일단 영화 자체가 전형적인 70년대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고, 정소영 감독의 연출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애(남정임)의 고통과 그녀의 딸인 은아의 노력으로 남편(윤일봉)의 용서를 받고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최하원 감독의 는 전형적인 반공영화다. 자유가 없는 지옥과 같은 북한과 자유가 넘치는 평화로운 남한이라는 도식적 이분법은 영화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남파 간첩 신정숙(우연정)은 인간은 당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경찰에 체포된 후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신분을 숨기고 병원에서 치료하게 되면서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남한과 북한을 차별화 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인간성에 대한 접근방식을 들고 나온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해야 되는 환자가 낙담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정숙은 나머지 한쪽 유방으로도 충분히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
가수 최헌의 노래 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크게 히트했다, 석래명 감독은 이 노래에 영감을 받아 당시의 톱스타 신성일, 정윤희, 김자옥을 캐스팅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후대의 관객인 내게는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 정도였다. 재미가 없진 않았지만 당시의 전형적인 삼각관계 스타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 1968년 작품 의 또 다른 아류라 할 평범한 멜로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첫 장면은 비오는 날이다. 노란 우산과 빨간 우산을 쓴 두 여자가 검은 우산들 사이로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그녀들은 정윤희와 김자옥. 신성일의 ‘두 여보’다. 최헌의 주제곡과 함께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예쁜 화면이 돋보이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장면이기도 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선희는 어머니가..
맹물로 움직이는 자동차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대기오염도 없을 것이고, 수도꼭지만 돌리면 되니 석유를 수입하느라 달러를 쓸 필요도 없을 것이며, 산유국들이 값을 올리네 마네 유세를 떨어도 “흥, 그러시든가”하면서 오히려 유세를 떨어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1974년도에 발표된 이형표 감독의 는 70년대 중반에 있었던 석유파동의 그림자가 깔려있다고 하니 그땐 누구나 한번쯤 맹물로 가는 자동차를 꿈꾸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는 적절한 사회적 이슈를 밑바탕에 깔고 미경(오수미), 문희(나하영), 수애(장미화)의 여자셋과 원대(신영일), 철권(신일룡), 윤수(김세환)의 남자셋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미팅하는 모양새마냥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 다투고 화해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로맨..
하춘화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내용이 적당할까? 지금의 기준으로 봐서는 하춘화 모창으로 유명한 개그맨 김영철의 영향 때문이라도 왠지 코미디영화가 어울릴 것 같지만, 1974년 막 20대에 접어든 초 절정 인기가수 하춘화는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더 적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최인현 감독의 은 바로 하춘화를 애절한 러브스토리의 히로인으로 만든 영화다. 인기가수 수지(하춘화)는 스타답지 않게 겸손하고 소박하다. 그런 수지를 쫓아다니는 팬 세훈(남진).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수지는 무리한 활동에 따른 병이 악화되어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 이즈음 세훈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 딸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결국 수지는 세훈을 떠나 보내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
최인현 감독의 1970년 작품 은 한국 최고의 남자 배우중 한명인 박노식 때문에 보게 된 영화다. 1970년에 일본 동경에서 엑스포가 개최되었고, 우리나라도 참가했고 아마 이 행사가 적잖이 화제가 된 모양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엑스포의 화려한 모습을 박노식의 시선을 통해 관광을 하는 듯 쭉 훓어준다. 한마디로 외국에서 열린 행사를 간접 경험해 보는 것. 특히 한국관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보여주면서 만족해하는 박노식의 모습을 통해 발전된 한국상을 과장하는 것도 당시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행사장의 모습이 첨단 기술로 무장한 다른 나라의 행사장과는 다르게 전통을 전시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인데, 경제개발계획으로 발전하고 있긴 했지만 아직 산업과 기술이 여물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1973년 10월에 개봉한 김수용 감독의 을 보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영화는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지독한 불황의 원인으로는 지나친 유신시절의 검열이 한 몫을 하기도 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TV의 보급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댄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한국영화의 수준 역시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락적으로 변변한 작품을 못 내놓고 있었고, 그렇다고 작품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고 예술성 있는 작품이 늘어난 것도 아니어서, 1973년이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김수용 감독은 60년대 쌓아 놓은 경력 덕분에 큰 흥행 영화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경력을 이어간다. 오히려 이 시기에 외화수입쿼터를 위한 우수영화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