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하원 감독의 <나는 살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반공영화다. 자유가 없는 지옥과 같은 북한과 자유가 넘치는 평화로운 남한이라는 도식적 이분법은 영화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남파 간첩 신정숙(우연정)은 인간은 당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경찰에 체포된 후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신분을 숨기고 병원에서 치료하게 되면서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남한과 북한을 차별화 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인간성에 대한 접근방식을 들고 나온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해야 되는 환자가 낙담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정숙은 나머지 한쪽 유방으로도 충분히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축구선수와의 데이트에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위축되는 장면에서 보여지 듯 기본적인 인간의 인권조차 북한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체제의 우위를 점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정숙 스스로 북한을 거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반공영화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어 간다.


재미있는 것은 당국의 관계자(아마 국정원 직원쯤)로 나온 전운이 북한의 비인권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모든 북한의 상황이 당시 유신시대의 남한의 상황이라고 해도 그다지 잘못된 것은 없더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지능적인 사회비판영화 아닌가? 북한을 비아냥거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남한의 상황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개봉 : 1976년 2월 14일 국제극장

감독 : 최하원

출연 : 우연정, 이정길, 전운, 도금봉, 강태기, 최성, 이향, 추석양, 김기종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