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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에 개봉한 김수용 감독의 <일요일의 손님들>을 보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영화는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지독한 불황의 원인으로는 지나친 유신시절의 검열이 한 몫을 하기도 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TV의 보급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댄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한국영화의 수준 역시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락적으로 변변한 작품을 못 내놓고 있었고, 그렇다고 작품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고 예술성 있는 작품이 늘어난 것도 아니어서, 1973년이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김수용 감독은 60년대 쌓아 놓은 경력 덕분에 큰 흥행 영화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경력을 이어간다. 오히려 이 시기에 외화수입쿼터를 위한 우수영화라는 명분하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타일이 독특한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이 영화 <일요일의 손님들>역시 그의 이런 실험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할 만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 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심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각가 백일승(신일룡)은 모든 여자들이 흠모하는 외모와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엔 플레이보이다. 기자 민지혜(명희)는 친구가 백일승 때문에 자살한 것을 계기로 그를 찾아간다. 백일승은 여자들을 도구로 다루는 자신의 모습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나쁜 남자적인 카리스마에 민지혜도 서서히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기 시작한다. 백일승에게는 또 한명의 여인이 있다. 그의 후원자인 수인(진도희)이다. 그녀는 물질로 백일승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그는 수인을 외면한다. 수인과 민지혜는 서로 연적아닌 연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백일승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회의와 발광으로 총을 쏘다 자살 아닌 자살을 하고 만다. 남겨진 여인들은 쓸쓸히 헤어진다.
전체적으로는 유럽형 모더니즘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경향이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한국적 상황이나 관객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독의 자의식에 기댄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물들을 지나치게 염세적으로만 그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자칫 영화가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일적인 면에서 김수용 감독의 이러한 모더니즘 실험은 분명 의미는 있는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발표한 몇몇 작품을 보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고 인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수용 감독은 이미 70년대 초반 발전한 한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고독에 사무친 존재로 묘사하고, 소통의 불가능성을 근심한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인들은 여전히 고독한 존재라고 말해진다. 현대인의 삶은 나아진 것이 전혀 없는 셈인가?
개봉 : 1973년 10월 20일 중앙극장
감독 : 김수용
출연 : 신일룡, 명희, 윤양하, 진도희,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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