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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라하는 배우 문숙. 이만희 감독이 죽은 후 한국을 떠났던 문숙. <미스영의 행방>은 문숙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의미가 있다. 문숙이 활짝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영화다. 언젠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문숙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40년의 세월을 건너 뛴 모습이지만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바로 앞에 있어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지 뭔가. 싸인이라도 받아보는 건데 하며 나의 소심함을 탓했더랬다.

 

문숙의 마지막 영화인 박남수 감독의 <미스영의 행방> 70년대 젊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때 젊은이들은 참 많이도 뛰어다닌다. 혼자 뛰고, 손을 잡고 뛰고, 가방을 빙빙 돌리면서 뛴다. 마치 뛰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의 주인공 난영과 진호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실망한 난영은 가출한다. 무단횡단 하다 붙잡혀 하루 경찰서 신세를 지며 같이 있던 진호와 알게 된다. 진호의 넉살이 마음에 드는 난영. 갈 곳 없던 난영은 진호가 신세지고 있는 민수의 집에서 같이 신세를 지게 된다. 세 사람의 재미있는 동거. 부모의 눈치보지 않고 거칠 것 없이 지내던 중 진호의 아버지가 결국 진호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간다. 난영과 민수는 서로 의지하게 되면서 진호는 실망한 채 뒤돌아선다. 시간이 흘러 민수는 시험에 합격하고, 진호는 대학으로 돌아간다. 난영은 그들을 모두 떠나기로 한다.

 

70년대 청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기성세대는 악덕 출판 업자 어머니, 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아버지, 자식의 뜻을 무시하는 독재자적 아버지로 구현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항 뒤에 오는 성찰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진호와 민수는 결국 제도권의 질서를 따르기로 한다. 영화 속 갈등도 거의 10분안에 해결해버린다. 엄마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친구였던 간호사는 아버지를 떠나 갑자가 시골이 좋다며 사라진다. 번역자와 고양이도 나름 좋은 결실을 남긴다. 남은 것은 난영이다.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미스영, 즉 제로처럼 사라져 버리기로 한다. 그녀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사라진다. 어느날 갑자기 문숙이 사라져버렸듯이 말이다. 난영은 진정한 미스 무존재였던 셈인가?


피에쓰

문숙은 2015년 뷰티인사이드에서 우진의 어머니 역을 맡아 연기활동을 재개했다.



개봉 : 1976년 1월 1일 국도극장

감독 : 박남수

출연 : 문숙, 장재훈, 강태기, 송재호, 전영선, 도금봉, 김무생, 임희춘, 김기종, 이일웅.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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