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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감독의 <나는 고백한다>는 결혼으로 은퇴했던 60년대 트로이카중의 한명이었던 남정임이 이혼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다. <미워도 다시한번>으로 한국 영화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면서 멜로영화에서 만큼은 중요한 파워를 가진 정소영 감독이라면 남정임으로서도 몇 년의 공백과 이혼이라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복귀가 되리라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큰 시너지 효과를 내진 못한 것 같다. 일단 영화 자체가 전형적인 70년대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고, 정소영 감독의 연출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애(남정임)의 고통과 그녀의 딸인 은아의 노력으로 남편(윤일봉)의 용서를 받고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한국영화에서 익숙하게 차용되던 아내에게만 강요되는 정절에 대한 요구와 처벌이라는 소재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각본이 TV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김수현이라는 것이다. 요즘의 눈으로야 이 영화가 다소 TV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었지만, 그렇다고 새롭게 느낄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우선 시나리오 작가인 김수현의 몫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불륜으로 처벌되는 아내라는 서사는 일제시대부터 있어왔다.

 

문제는 아내의 의지가 아니라 힘이나 폭력 혹은 거짓에 의해 한순간의 실수로 일탈에 빠질 경우에 발생한다. 이런 경우 한국영화는 사건의 인과보다는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폭압적인 방식으로 아내를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고백한다>의 경우에는 현애가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고 난 이후 다시 가정으로 복귀한다는 설정으로 처리하면서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던 그 실수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수현이 여성이기 때문에 좀 더 아내에게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감독인 정소영의 그림자도 지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영화를 단순히 고무신 관객을 울리기 위한 신파 멜로드라마로 낙인 찍을 수도 있겠지만 문희가 맡았던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좀 더 세밀히 본다면 정소영 감독이 여성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이 매저키스트적이지 않으며 또한 고루하지 만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미워도 다시한번 2편과 3편으로 갈수록 문희의 캐릭터는 진부해지면서 1편의 장점을 까먹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게 감독과 작가의 특성에 비춰볼때 <나는 고백한다>의 이러한 결론이 진보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나름 당대의 비슷비슷한 영화에 비해 좀 다르게 접근해 보려 한 것은 아니가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진부하다면 진부한 편이다. 특히 후반부의 감정의 과잉은 영화의 리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말을 향해 질주하면서 영화의 질을 감쇄시키는데 일조한다. 더군다나 아내가 남편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컷이 바뀌면 갑자기 현애가 남편과 함께 고운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한마디로 뜨악이다. 이 영화의 오리지날 상영시간과 비디오의 상영시간은 10여분 이상 차이가 나는데, 비디오로 만드는 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결론을 위한 결론도 아니고 삼류감독 이라도 이런식으로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폭음 끝에 잠시 필름이 끊긴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남정임은 제2의 데뷔인 만큼 정말 열심히 연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저분한 분장으로 알콜 중독자를 연기할 때, 예전의 예쁜 모습만 기억하던 나에겐 생경함을 주기도 했지만, 역시 열정이 있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고 할까? , 하나의 옥의 티라면 알콜중독으로 얼굴이며 몸이 다 망가진 여인이 손톱만큼은 너무 잘 다듬었더라는 것. 그녀의 두 번째 은퇴작인 웃음소리에서 항상 손톱을 손질하던 모습과 겹치며 이상한 상호텍스트성을 느끼고 말았다.



개봉 : 1976년 1월 11일 국도극장

감독 : 정소영

출연 : 남정임, 윤일봉, 김종결, 유영국, 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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