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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한나>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좀 의아하긴 했다. 멜로드라마를 고급스럽게 만들었던 감독이 액션영화라니...그런 느낌. 그래서인지 그다지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게다가 입소문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기대는 점점 떨어졌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지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배우 에릭 바나가 나오네? 이랬을 정도다. 하지만 다 보고 난 후엔 영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인간 병기로 키워진 어린 소녀의 맨몸 액션도 볼 만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외로움의 정서가 와 닿는다.

 


마치 본 시리즈를 처음 볼 때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알싸한 감정이라고 할까? 묘하게 가슴 한 곳이 묵직해지다가 여운이 드리우고, 뭔가 슬픈 듯 하다가 쓸쓸해지는 것 같은 느낌. 영화가 너무 뛰어나 받는 경이감이 아닌 어쩌면 주인공의 정서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 들어가 같이 엉켜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영화였다. 전작인 <어톤먼트>를 보면서도 끝까지 만나지 못하는 연인을 보며 무척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나>는 그것과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든다. 이러한 감정의 파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조 라이트 감독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장르를 불문하고 말이다.

 

 

무척 추워 보이는 겨울의 숲속. 한나는 사냥을 하고 아버지와 격투와 무술을 연마하고, 아버지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음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연약해 보이는 소녀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만 강한 전사가 되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단 하나의 목표는 마리사 위글러다. 아기때부터 인간병기로 키워진 한나는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마리사를 공격하러 떠나며 아버지와 헤어진다. 한나는 킬러로서의 본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마리사 위글러를 처치하는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가짜였고, 이제 진짜 마리사 위글러와 한나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액션영화라기보다는 성장영화의 모양새가 강해진다. 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멋진 격투씬과 액션씬들이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나가 세상을 바라보고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소피와 그녀의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음악을 듣고 데이트를 하며 세상살이를 배우고, 결국 그가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놀이동산이라는 것은 그동안 한나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동심에 대한 회복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그 동심의 공간에서 그녀를 만들어냈던 모든 인물들 즉, 아버지 에릭, 마리사, 그 외 킬러들이 죽는다는 것은 한나를 옭아매려던 국가권력으로서의 권력의 붕괴다. 이제 개인으로서의 한나의 삶만 남아있다. 마리사와의 마지막 결투에서 그녀가 지나온 어두운 터널은 어쩌면 자궁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한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사라졌고. 한나는 새로 태어나는 일만 남았다. 그녀의 미래가 소피가 될지, 아니면 프로덕션의 이익을 위해 속편의 인간병기로 환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쩄거나 나는 그녀가 평범한 소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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