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별로 재미있지는 않아요. 나는 꼭 어떤 울타리에 같혀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루하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수가 없어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소나티네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타노 감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리한 일상과 삶이라는 것의 무미건조함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다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일상의 무료함이다. 폭력은 그 일상속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듯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상이 되어 버린 폭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옆에서 칼부림이 나도 관심이 없다. 단지 싸우고 죽이는 것이 직업인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에서 홍콩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물론 분명한 정치색을 띤 채 노골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늘 반환의 불안을 관계의 불안함으로 치환한 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는 그의 불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1997년이라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가 의식하든 안하든 그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왕가위 감독은 주술사가 되기로 한다. 원시 사회에서 미래를 점치며 마을의 액운을 몰아내는 주술사의 역할을 기꺼어 떠맡으며 불안한 미래를 짊어진 홍콩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토해내려고 단단히 작정을 한 듯 하다. 그렇다면 왕가위가 굳이 왜 동성애라는 소재를 들고 나왔을까? 이 영화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이 그렇..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얀 눈속에 묻혀있는 러브레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한장씩 읽어본다.. 그 읽는다는 것은 결국 진실을 향한 여행이다.묻혀 있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진정 이와이 슈운지 감독이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남자친구인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한다.중학교 시절 졸업앨범에서 알아낸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장이 온다.답장을 보낸 사람은 남자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이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였다.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졌던 사내아이에 대한 회상을 한다.그런데 그와의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을 더듬을수록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자신을 사랑..
이스라엘은 양가감정을 갖게 만드는 나라다. 2차 대전중의 유태인의 비극은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영화로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한 희생자의 이미지는 보편적인 이스라엘의 이미지로 알려져 왔다. 특히 어린시절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더욱 미화되었는데, 사막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짓는다는 식으로 대단한 나라라고 배웠고, 탈무드도 무조건 읽어야 되는 권장도서였지 않은가.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는 이스라엘/유태인에 대한 죄는 비단 전쟁으로 인한 독일의 죄를 넘어서서 전 인류의 트라우마가 되어왔다. 그러한 희생자의 이미지속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잔인함과 중동을 화약고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은 상당부분 은폐되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좀 나이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 1941년에 만든 는 정말 간결한 이야기. 착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속에 감독의 사회 비판 정신도 오롯이 숨어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참 흐뭇해진다. 10대 중반의 다카미네 히데코의 해맑은 모습과 더불어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준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긍정적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버스차장 코마의 밝은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일하는 버스가 경쟁회사의 최신 버스에 밀려 손님이 없어 코마는 속이 상한다. 어느날 관광버스 안내원에 대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난 후, 코마는 버스가 지나가는 노선에 있는 중요한 유적을 안내하면서 손님을 유치해 보자고 제안한다. 운전사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
아시아의 잘 사는 나라 싱가폴은 겉으로 보기야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만이나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며 버티고, 자식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다 똑같더라. 이 영화의 인물과 장소를 한국으로 바꿔놓고 같은 사건을 만들어도 충분히 한국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걸 동시대성이라고 하는 걸까? 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안소니 첸 감독의 데뷔작이다. 먹고 살기 위해 바쁜 엄마, 아빠의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러는 이래저래 말썽을 피운다. 임신중인 엄마는 더 이상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필리핀 여자인 테레사를 도우미로 들인다. 그리고 테레사와 자러는 조금씩 우정을 키워간다. 택배회사에서 일..
잔잔하지만 가슴 한쪽이 묵직해지는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이 구로자와 기요시다. 기요시는 공포영화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드라마 장르도 잘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그의 영화는 공포영화이든 드라마든 공통적으로 느껴지는건 건조함이다. 진짜 나뭇잎이 바짝 말라버린 것 같은 건조함이 프레임을 뚫고 삐져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밟았을 때의 바스락거림과 바짝 마른 낙엽조각들처럼 그렇게 인물들의 삶은 영화속에서 부서져 내리는 것이다. 는 공포영화가 아니어서 인지 그 건조함이 좀 더 내밀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장르가 드라마라서인가 그건 오히려 스산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건조함과 스산함. 뜻이야 어떻든 영화속 4명의 가족과 그 주변인들의 삶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각박한 현실속에 ..
모든 것은 내가 진추하의 노래 ONE SUMMER NIGHT을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어디선가 흘러 나오고, 중학생 때는 라디오의 영화음악실에서 많이 들었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샀던 비짜 영화음악 모듬 테잎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 입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때문에 많이 좋아하는 노래였다. 그래서 one summer night이 라는 영화의 주제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는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쯤 보고 싶은 영화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서고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영화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라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가 one summer night이 삽입되어 있는 바로 그 영화인가 보다 했는데 두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