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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영화에서 홍콩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물론 분명한 정치색을 띤 채 노골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늘 반환의 불안을 관계의 불안함으로 치환한 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해피 투게더>는 그의 불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1997년이라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가 의식하든 안하든 그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왕가위 감독은 주술사가 되기로 한다. 원시 사회에서 미래를 점치며 마을의 액운을 몰아내는 주술사의 역할을 기꺼어 떠맡으며 불안한 미래를 짊어진 홍콩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토해내려고 단단히 작정을 한 듯 하다.
그렇다면 왕가위가 굳이 왜 동성애라는 소재를 들고 나왔을까? 이 영화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으며 동성애 코드를 통해 뭔가 말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는 동성애를 성정치학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아예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HOMOSEXUAL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그건 헛다리 짚어도 단단히 짚은 것이다. 왕가위가 바라보는 동성애는 단지 주류질서에서 밀려나 있는 어떤 것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결합방식의 주류에서 벗어난 것이 동성애이며 그것은 다시 세계의 질서로부터 마치 물건처럼 여기서(영국) 저기로(중국)으로 던져지는 희한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홍콩의 모습을 동성애라는 타자의 모습에 덧입혀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즉 홍콩 역시 세계의 질서로부터 점점 타자화되며 마치 고아처럼 방황하는 것은 아닌가 물어보는 수단인 셈이다.
그래서 의미심장하게도 첫 장면에서 여권을 보여준다. 이땅에서 저땅으로 넘어가는 것은 여권이라는 도구가 꼭 필요한 것이므로, 또한 홍콩 사람들은 지금까지 여권을 소지한 채 혹시 남의 땅에서 살아온 것은 아닌가를 반문한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아르헨티나에 있는지도^^. 그래서 영화 시작과 함께 들리는 "다시 시작하자"는 대사는 어떻게든 희망을 붙들어 보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들린다. 그래서 왕가위는 이 대사에 생명력을 영화를 통해 수혈하기 시작한다. 왕가위 감독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만드는 방식은 줄곧 멜로드라마였다. 그동안 그가 사건에 개입하는 방식이 주관적인 카메라의 시점이었다면 이번에는 객관적 시점에서 다시 한번 바라보자는 듯 카메라는 사건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카메라는 단지 보헤미안인 그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래서 일까? 그의 전매특허같은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카메라는 아주 아주 절제된다. 단지 멜로드라마의 구조속에서 갈등과 화해와 방황을 반복하는 그들을 지켜볼 뿐. 그렇다면 요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이과수 폭포와 장(장첸)이 가보고 싶어하는 땅끝은 무엇때문에 그들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그곳이 희망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땅끝과 폭포라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힘이자 질서이지만 그것은 진정한 끝은 아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땅끝과 폭포는 연결되어 있다. 장이 땅끝에서 요휘의 희망이 담긴 테잎을 들으며 세상에 뿌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지만 그것은 요휘의 희망이 담긴 메시지이며 요휘가 지향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을 요휘는 이과수 폭포에서 받아들인다. 폭포 역시 땅끝에서 흘러내린다. 절벽의 끝 혹은 땅의 끝으로 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그 물줄기는 희망의 물방울이 되어 요휘의 온 몸을 적신다. 결국 요휘는 홍콩으로 돌아가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다. 자신이 뱉어낸 희망을 그는 온 몸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요휘의 희망의 메시지는 주술이 되어 퍼진다. 장역시 땅끝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보영 역시 여권을 찾으며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스탠드의 불빛을 바라보며 홍콩으로 돌아갈수 있는 희망을 품는다. 결국 해피투게더는 한 판 신명나는 굿이다.
왕가위 감독이 홍콩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멋진 축제인 셈이며, 희망의 샘물을 엄청난 물줄기로 그들의 머리에 퍼붇는다. 처음에 폭포가 나올때는 비둘기 울음소리를 묘사한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꿈꾸고, 마지막에 보이는 폭포에서는 해피 투게더를 부르며 희망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해피 투게더는 끝은 새로운 희망을 시작하는 출발점임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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