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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별로 재미있지는 않아요. 나는 꼭 어떤 울타리에 같혀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루하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수가 없어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소나티네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타노 감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리한 일상과 삶이라는 것의 무미건조함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다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일상의 무료함이다. 폭력은 그 일상속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듯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상이 되어 버린 폭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옆에서 칼부림이 나도 관심이 없다. 단지 싸우고 죽이는 것이 직업인 것이다. 그리고 설령 운이 없어 죽더라도 그것은 흔히 있는 직업병정도가 된다. 그들은 야쿠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지리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인 것이다. 폭력이라는 것, 보스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일상에 함몰되어 그냥 그렇게 살아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미덕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다케시 감독이 평범한 감독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제시하는 일상에서의 탈출법에 주목해보자.
거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야쿠자는 부드러운 일본 전통춤을 추며 일상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거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바닷가에서의 스모, 러시안 룰렛, 불꽃놀이 총싸움.함정파기등등 마치 어린아이들 처럼 놀면서 벗어나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벗어남은 바로 죽음이다.
첫장면에서 꼬챙이에 찔린 채 매달려 있는 물고기를 보자. 물고기의 일상은 바닷가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바닷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가지 방법은 죽어서 뭍으로 나오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물고기의 표정은 고통의 표정이 아닌 것이다. 그 물고기와 정확하게 연결되는 인물이 바로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이다. 무라카와는 야쿠자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툭 던지면서 하는 말”나 야쿠자 그만 둘까봐”) 그러나 무라카와는 아무리 오키나와의 깊숙한 해변에 숨어 있어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해안에서 쉬고 있어도 일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있는 한 그는 그 속에 다시 편입해야 한다.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의 해결점은 바로 죽음뿐이다. 그래서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라카와의 죽음은 진정한 자유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럼 죽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감독은 세심하게도 무라카와의 죽음뒤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일상은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 시켜준다. 남편에게 강간당할 뻔한 여자는 야쿠자의 세계에 들어서며 일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벗어남 일뿐 여전히 울타리 안이다. 그녀가 아무리 불꽃을 쏘아대고 함정에 빠져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이 아닌 이상에는 그리움일 뿐인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야쿠자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감독은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는 관심이 없으며, 기존의 영화에서 다루는 의리니 뭐니 하는 것을 다루지도 않는다. 결국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에 허덕이며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고, 그 속에서,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표정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인들의 단면 나아가 현대인들의 얼굴을 파헤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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