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민중 시인 네루다와 그를 쫒는 형사 오스카의 이야기. 영화를 보고 있자면 희한하게도 네루다보다는 공안 형사 오스카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민중을 외치는 코뮤니스트지만 네루다는 19세기적 귀족주의의 향기가 남아있어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댓글을 보니 네루다를 강남좌파라고 표현하기도 했던데, 왠지 어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루다와 같은 삶이 아니라 오스카 같은 삶을 살고 있고 감독인 파블로 라라인 역시 영화 타이틀은 네루다를 내세우지만,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일개 시민인 오스카의 삶에 더 다가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었을런지. 어떻게 보면 오스카의 삶은 한낱 모래 한 알의 티가 되어 사라질 삶이다. 자신이 아무리 주연이라 우겨도 결국엔 조연이다. 하지만 오스카와 같은 운..
재능이 없거나 가난하거나 기회를 잡지 못해서 자신의 꿈에 접근조차 해보지 못했던 사브지안이 우연히 이란의 대표적 감독인 모흐센 마흐발마프 감독으로 오인받고 일어나는 일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다큐와 픽션을 섞어 만들었다. 주인공인 사브지안의 대사 중 감독이 되었을 때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장면이 있다. 하층민이었던 그가 평소엔 무시당하다가 마흐발마프로 오인된 이후의 그의 말은 ‘같은 말이지만’ 존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사회가 여전히 계급사회임을 알게 해준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영화가 허구의 세계이긴 하지만 현실은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영화를 보고 있자면 사브지안이 처한 현실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던 평범한..
지구를 아예 폭발시켜 없애버리는 결말은 이미 장준환의 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덕분에 그렉 아라키의 에서의 지구 폭발은 그 충격이 좀 덜한 편이긴 하지만 사이비 종교와 연관 지은 지구멸망이라는 스토리는 저예산영화의 소재로서는 괜찮은 듯. 교주의 선택된 아들이라는 컨셉이지만 솔직히 이 선택된 아들이 하는 일이라곤 섹스외엔 아무것도 없다. 주위의 인물들이 모두 그 교주의 아들을 둘러싼 인물들이라는 것이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히어로 영화가 아닌 이상 그에게 지구와 인류를 구할 임무는 없는 셈이다. 그렉 아라키의 입장에서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지구와 인류는 없어도 무방해 보이는 듯.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초능력자들이나 이성애 대신 동성애와 양성애가 오히려 정상적인 형태라고 말하는 듯한 자유분방함. 이전의 ..
70년대는 시리즈를. 80년대는 같은 청춘영화로 이름을 알린 문여송 감독. 그 외에도 다양한 멜로영화를 만들었다. 간혹 흥행에는 성공했을 지언정 완성도 있는 대표작을 한 손에 꼽기는 힘든 감독이기도 하다. 는 1978년에 발표한 영화로 서울관객 12만여명을 동원하여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하지만 흥행과는 별도로 나에겐 이 영화 역시 문여송 감독의 그렇고 그런 작품 중의 하나로 생각될 뿐 큰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 가 그의 영화 중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든다. 는 당시 유행했던 여성 잔혹사계열의 영화라고 할 만 하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여자를 당시의 사회가 어떻게 소비하고 버렸는가에 대해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의 심각성에 비해 감독의 역량이 미치지 못..
1979년 한국영화 흥행 1위. 이 영화의 무엇이 관객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영화를 다 본 후의 나의 느낌은 김수현이 쓴 각본의 힘은 있어 그럭저럭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많다 보니 차별점을 찾지 못해 식상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 1978년에 흥행한 내가 버린 여자의 속편 느낌도 강하다. 친구들과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인 명숙이 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리고, 그녀를 구해준 돈 많은 홀아비 민하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의 과거로 인해 위기가 닥친다... 정소영 감독의 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영화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저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말하는데, 그저 착한 남자와 발랑 까져 보이지만 실..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올리버 라세 감독의 스타일을 마냥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너무 재미가 없다. 감독의 의도가 관객이 느린 호흡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카메라로 왜곡되지 않은 세상 그대로 말이다. 이렇게나 내성적인 주인공을 설정하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느리며, 몇 명 되지 않는 주위의 인물들 역시 매한가지라면. 좀비도 달리기를 하는 세상에 오히려 초기의 좀비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싶은 건가 싶고, 정말 그래야만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라는 속도를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올리버 라세 감독은 세상이 할리우드 영화 속 다이나믹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
어린 꾸제트의 짧은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알코올 중독인 엄마가 사고로 죽자 고아원으로 오게 된 꾸제트.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색한 꾸제트. 고아원에는 여러 사정으로 오게 된 또래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고 장난치고 짓궂게 굴면서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음이 힘든 아이들이었던 것. 그렇게 다시 서로 이해하며 위로해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기도 모르는 새 스며들듯 습득한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위할 줄 아는 것임을. 그렇다고 이런 태도들이 마냥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어울리고 부때끼는 와중에 스며들듯 습득하는 것을 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영화다. 더불어 어른(고아원..
드라마 버전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하지도 못하니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느낀 을 재미있게 보았다. 이 영화는 주인공 네 명, 각각의 캐릭터가 얼마나 개성과 매력이 차고 넘치는가가 관건인 영화다. 반면 그만큼 사건의 임팩트는 약해 보인다. 갈등의 골도 없고. 모든 사건은 마음먹은 대로 슬슬 풀리며 진행. 마동석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김아중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봄. 젊은 형사를 연기한 장기용도 나름 선방. 김상중의 캐릭터는 좀 평범해 보이기도 했지만 개성 강한 인물들 사이에서 중재역할은 한다. 일당백의 싸움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용되어 때론 헛웃음도 유발하고, 모든 사건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술술 풀려버리기도 하지만, 재미있다고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