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태 감독의 를 보았다. 나에게 박호태 감독은 80년대 내내 시리즈 덕분으로 에로영화 감독으로만 인식되었는데, 70년대 영화를 몇 편 찾아보면서 그가 생각보다는 여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완성도 있는 작품은 드문 편이지만, 78년에 개봉된 는 호스티스물의 인기에 힘입어 크게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는 이듬해인 1979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지금까지 봤던 박호태 감독의 작품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호(남궁원)과 연하(윤연경)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후, 시골의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삶을 바치고 있다. 그들은 아들과 딸을 두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날 광호는 분교장 모임 참석..
영화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박태원 감독의 영화 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한 편 있다. 1977년에 개봉된 이라는 영화다. 어릴 때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남아 있는 영화다. 얼마전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예전의 재미는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확실히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을 만든 박태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유신시절에 많이 만들어졌던 계몽영화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희망자율원이라는 일종의 청소년 선도기관을 운영하는 전직 검사의 이야기로, 고난을 극복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하고자 하는 4명의 우범소년들이다. 하명중, 김도향..
1960년대의 신상옥 감독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작품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오락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완성도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60년대 신상옥 감독은 영화 산업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과의 교감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신상옥이라는 이름과 신필름이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화려했던 60년대의 끝자락인 1969년에 개봉된 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신기했던 것이 지금의 관객인 나로서는 그동안 TV의 전설의 고향이나 여타 드라마를 통해 이미 너무 많이 접해 닳고 닳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이야기를 ..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은 워낙 많이 알려지고 연구되어져서 뭔가 더 새로운 걸 보겠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영화처럼 보인다. 영화가 가지는 풍부한 정치적 상징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만큼이나 세련된 스타일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나는 이 영화에서 건방지게도(?)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해 내리라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대단하다는 이 영화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리라 생각할 뿐이었다. 어쨌든 다양한 정치적 알레고리를 상징적 미장센으로 대체하면서, 당시 직접적인 대사나 화면으로 구구절절 설명을 통해 관객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한국영화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는 점은 이 영화가 당대의 어떤 영화보다 스타일적으로 앞서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나친 상징성이나 ..
1968년 의 메가히트는 정소영 감독을 한국 멜로드라마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으로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신파적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를 적당한 선에서 절제하는 편이라서 깔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은 1970년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인데, 이 시기 정소영 감독은 이후 4편까지 만들어진 연작을 계속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참신함을 상실하며 매너리즘에 빠지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만든 은 깔끔한 멜로드라마로 만들어진 것 같다. 마치 후편들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은 어느 정도 정성을 많이 쏟은 느낌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전형적인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악역을 배제함으로써,..
1969년 개봉한 박종호 감독의 는 당대의 시각에서 파격적이라 할 만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동시에 대담한 노출과 러브씬의 묘사 등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키며 파문을 만든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에겐 무엇보다도 이나 여타 영화를 통해 대표적인 청순가련형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문희의 색다른 변신이 더욱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여대생인 미지(문희)는 약혼자인 성민(남진)이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성불구가 된 것을 알고 방황하던 중 병원에서 만난 허사장(남궁원)과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된다. 성민과 허사장 사이에서 정신적 사랑과 욕망에 대해 갈등하던 미지는 두 사람과 모두 이별하며 홀로서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기도 한 미지라는 여성 캐릭터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의 행동..
김호선 감독의 는 원래 극장 개봉시에 이라는 제목으로 홍보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시리즈라는 광고문구가 있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자 비디오 출시때는 아예 제목을 로 바꾸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비행청소년이라는 소재를 차용하여 이전의 성공작 의 덕을 좀 보고자 했던 듯 싶은 이 영화는 청소년들의 비행의 원인을 이전작과 동일한 곳에서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비도덕적 이중생활로 인한 가정불화가 유리(김혜수)의 반항의 원인으로,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머니의 무관심이 준(민규)의 비행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고민없는 아류작의 운명이란 이런 것일까?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주제에 대한 접근이 모두 너무너무 진부하게 보였다. 더군다나 전작이 거칠게나마 부모의 문제에도 관심..
청소년 영화는 80년대로 넘어오면서 70년대의 낭만적 판타지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의 현실 자체를 인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은 이미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적으로 얼마나 변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스타일적으로는 일본영화와 비슷한 장면들이 많아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여류감독이었던 이미례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전의 하이틴 영화들이 건전과 모범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반항과 비행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80년대 청소년 영화의 전형을 만든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주인공인 유리(김진아)라는 캐릭터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유형의 10대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유리가 왜 반항하고 비행에 ..